기둥시계
기둥시계
  • 제주신보
  • 승인 201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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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식/수필가

무엇이든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때 빛이 난다. 평상시에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하다가 없어서야 그 귀함을 안다. 30년 전 주유소 개업 때 동네 주민들이 큼직한 기둥시계를 선물로 가져왔다.


제때에 건전지만 갈아주면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갔고,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시계를 보며 일을 했다. 건전지를 넣는 곳이 부식돼 몇 년 전에 부속을 바꿔 준 일 외에는 별 탈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장마가 끝나자 시계가 멈췄다.


약을 갈아 끼워도 움직이지 않자, 직원들은 수명이 다 되었으니 새것으로 바꿨으면 했다. 아내도 자꾸 고치는 값이면 차라리 새것을 사는 편이 났다며 직원들 편을 든다.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도 동네 사람들이 주유소에 오면 저 기둥시계는 자기들의 기증 했다며 자랑을 한다.


마을에서 단체로 마련해 준 것이니 웬만하면 고쳐서라도 오래오래 사용하는 것이 그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나는 고장 난 기둥시계를 혼자 고집스럽게 차에 싣고 시계방으로 갔다. 그런데 가게 주인이 고령이라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다른 점포를 찾아갔으나 두 번째 집 역시 그런 시계는 취급하지 않는다며 다른 곳으로 가 보라고 한다.


그러다 겨우 한 곳에서 수리를 부탁해서 며칠 후에 찾아왔다.


일주일 쯤 지나니 기둥시계는 또다시 멈췄다. 겉으로는 아직도 멀쩡하고 깨끗하여 버리려니 며칠을 두고 생각을 해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몇 시나 됐나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무의식중에 그 쪽을 본다. 여전히 시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내키지는 않지만 할 수 없이 버리기로 마음먹고 화물차에 실었다. 직원들은 괜히 고생을 사서 한다는 표정이다. 그 때 문득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차에 실었던 그 시계를 내 방으로 다시 가져오게 했더니, 직원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이십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양부모 집에는 골동품 가게에나 있을 것 같은 옛날 시계가 기둥에 걸려 있었다. 텝만 감아 주면 그때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신 후였고, 나는 그 시계를 보며 선친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짐작게 했다.


날씨는 찜통더위라 상의를 벗어놓고 시계를 열었다. 원인이 무엇인가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시계 뚜껑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직원들은 때로는 시계가 미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퇴근하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빨리 가 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고, 나는 바쁠 때면 일을 좀 더하게 시계가 천천히 갔으면 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원칙을 고수하며 어느 편으로도 기울어짐이 없이 시계추는 중심을 잡아 주었던 고지식한 놈이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원인이 무엇인지 원인이나 규명하고 인연을 접을 참이었다. 쓰레기통으로 갈 때 가더라도 30년 가까이 같이해 온 인연인데,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뚜껑을 열어 보니 덩치만 컸지 내용은 간단했다. 유심히 관찰하며 선도 만져보고 다시 살아나는 가 살피다가 ‘아차! 이거로구나.’ 또 다른 곳에 건전지가 하나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문득 건전지가 오래되어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내 손으로 건전지도 갈아 주어 본 적도 없고, 뚜껑을 열어 그 구조를 관찰한 적도 없었다. 내가 너무 소홀히 한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른 방에 걸려 있던 시계에서 약을 하나 갔다가 끼워 넣었더니 재깍재깍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좋아서 어디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냥 내버렸으면 고철은 고철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분리되어 시계로서 생을 마감할 것을….

몇번을 닦고 닦으면서 내가 사는 날까지 고장 나지 말기를 바라면서 기둥에 다시 걸었다.


다음 날 아침에 사무실 중앙에서 접시만 한 금색 추가 광채를 발하며 좌우로 힘차게 움직여 여덟 시를 알리자, “아, 시계가 돌아가네.” 하면서 직원들이 하나둘 사무실로 들어선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동네 주민들에게 시계를 계속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사 매사를 경솔하게 하지 말고 신중하게 살다가 보면 이런 날도 있구나. 나는 기둥시계를 보면서 오늘도 또 하나를 배운다.


<○○통민일동>이라는 글씨가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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