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해녀를 치고 자식을 후려치고

강인해라 강인해라

여자를 키우는 곳

물밭에서 돌밭에서
팔을 맞고 등을 맞고,


잔정을 맞는 여자가 크는 곳
바다가 여자를 끼고 있어 남자가 쓸쓸하다
여자를 다 품어 저 혼자 푸른 바다가
지칠 줄 모르는 용솟음으로
요망져라 요망져라
연애 한 번 짠하게 못해 본 여자를
터전의 용사로 키우는 곳,


요망진 여자가 바다를 지키고 있어
바다가 젊디젊다


-김병심의 ‘사계리 바다’ 전문

   
▲ 서른 한 번째 바람난장이 사례리 발자국화석 지대 인근에서 진행됐다. 김해곤 作 ‘왕들의 발자취’.

신이 완벽하다는 건 인간들의 편견인지 모른다.


신은 사람들의 전생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듯,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전세상의 기억이나 흔적들도 깨끗이 지워낸다. 하지만, ‘아차’하고 던진 패를 다시 주워들지 못하는 ‘낙장불입(落張不入)’처럼 그 흔적들을 지워내지 못한 곳들이 있다.

 

일테면 신석기시대의 고래잡이 모습 등이 새겨진 울주군의 반구 대암각화나,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진 천전리각석 등이 그렇다.


제주에도 그런 곳이 있다.


서른두 번째 바람 난장은 산방산과 송악산 사이, 즉 사계리와 상모리 사이, 마치 구들장처럼 펼쳐진 발자국화석지대 인근에서 열렸다. 바로 눈앞에 형제섬도 와 있었다.


이곳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 인공구조물이 들어서면서 조류가 변하고 태풍 등의 영향으로 모래 유실이 가속화되면서 1990년대에 와서는 아예 모래는 사라지고 바닥이 드러나 학자들에 의해 ‘발자국 화석’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 제주클라리넷콰이어가 헨델의 ‘라르고’를 연주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이곳의 지층은 수중화산 분화 활동에 의해 형성된 응회암 퇴적층이며, 사람발자국을 비롯한 말, 코끼리, 사슴, 새, 게 등 다양한 종류의 화석이 산출되었고, 약 1만 5천 년 전에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난장 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윤봉택시인 (전 서귀포시 문화재 전임연구원)은 “사람발자국화석의 발견은 아시아에서 최초”라며, “우리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이자, 제주가 연륙 시기에 남겨진 탐라인 조상발자국으로서 삶의 자취를 해석하고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낭송가 윤행순씨가 이 마을 출신 김병심 시인의 ‘사계리 바다’를, 시 낭송가 손희정씨가 오승철 시인의 ‘발자국들’을 낭송하고, 제주클라리넷 콰이어의 정욱성 대표를 포함한 여섯 명의 단원들이 헨델의 ‘라르고’를 연주하는 동안,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들이 1만여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함께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같았다. 우리는 물고기 형상의 자그마한 한지에 소원을 적어 바다로 띄워 보냈다. 소통이란, 난장이란, 그리고 시간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시 낭송가 윤행순씨가 김병심 시인의 시 ‘사계리 바다’를 낭송하는 모습(원쪽)과 윤봉택 시인(전 서귀포시 문화재 전임연구원)이 화석발자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그 옛날 그때에도 필시 북적북적 붐비는 사계리 오일장 날은 아니었을까.


사람과 모든 동물들의 발자국이 흥정 하듯 평화롭게 남아 있다. 그 난장에서 따뜻한 호떡이나 사고 싶다.

 


글=오승철·그림=김해곤
연주=정욱성·고은임·오유경
김미영·위명희·부경숙
시낭송=윤행순·손희정

 


※다음 바람난장은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갤러리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