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에서 워싱턴 야자가 많이 심어진 배경이다. 물론 그 목적은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3년부터 식재돼 현재 3500여 그루가 도내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아름다운 남국의 풍경을 만들어 내며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런 워싱턴 야자가 도로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이유인 즉, 본의 아니게 정전 사고의 주범으로 몰린 탓이다. 워싱턴 야자는 다 자라게 되면 높이가 15~27m에 달한다. 그야말로 하늘 위로 높게 뻗은 셈이다. 문제는 바람이 강하게 불면 야자수가 고압선에 닿아 정전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삿일은 아니다.
최근 5년간 제주시에서만 야자수로 인한 정전 사고는 8건에 이른다고 한다. 태풍 등에 쓰러지면서 전선을 건드려 대규모 정전 사고가 일어난 경우도 있다. 지난해 태풍 ‘차바’가 제주를 휩쓸고 갔을 때 서귀포시 법환동에 있던 야자수가 강풍에 쓰러지며 전신주를 건드려 884가구에 정전이 나기도 했다.
일부 도로의 야자수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까닭인 듯하다. 제주시 가령로 일대 워싱턴 야자가 단적인 예다. 이 일대엔 10m 넘는 야자수가 2만5000V의 고압선과 얽혀 있어 사고 위험이 그만큼 크다고 한다. 해당 구역 야자수 38그루가 내달까지 뽑혀져 군부대에 옮겨 심어지는 건 그래서다. 대신 그 자리엔 상록활엽수종인 먼나무가 식재된다.
앞서 제주시와 한전은 지난 4월 ‘야자수 이식 지원사업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제주시는 순차적으로 워싱턴 야자 230그루를 이식할 계획이다. 일종의 고육책인 것은 알지만 왠지 모르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전선 지중화 사업이 이뤄지면 워싱턴 야자를 옮겨 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제주시 승천로가 거기에 해당된다. 제주시와 한전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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