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담, 공동체 정신이 깃든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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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물이 봉봉 들었다’는 말이 있다. 만조를 일컫는 제주말이다. 밀물 때 바닷물이 더 이상 차오르지 못하는 상태, 즉 바닷물 최대 수위가 된 모습을 말한다.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져 만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범람하는 지역도 있다. ‘봉봉 든 물’은 한동안 물이 꽉 찬 상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해변은 갑자기 시끄러워지면서 흰 파도가 인다. 이때가 썰물의 시작이다.

썰물 때가 되면 해참을 보며 밭에서 일하던 ?녀들이 물질을 위해 불턱으로 온다. 썰물이 되면 마을 사람들도 분주해진다. 점점 드러나는 해안, 보이지 않던 바닷속 여들이 마치 작은 섬처럼 물 위에 떠오르고, 그 여와 여를 이어 만든 원담도 모습을 드러내며 바닷길처럼 누워있다.

원담의 모양은 마을마다 ?형태, 혹은 ┰자, ㄱ자 등 매우 다양하다. 다겹담 모양으로 돌그물 역할을 했던 원담의 선들이 바닷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썰물 때 위용이 드러나는 원담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의 자연미를 머금고 있다. 원담은 필요에 의해 인공적으로 쌓은 돌담이지만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순간 자연 그대로의 장소가 된다.

원담은 석다(石多)의 섬 제주 해안의 삶을 위한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은 마을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되고, 제사에 이롭게 하며,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의 상징성이 되기도 했다. 원시적 어로 시설로서 제주 공동체의 부족한 식량 자원을 충당하는 보조적인 역할도 있는 것이다. 원담에는 정이 깃들어 있다. 원담의 출현 자체가 마을 공동의 노력, 즉 협업으로 건설됐기 때문이다. 원담은 주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마을 청년들이 관리했다. 마을 주민들은 서로의 능력에 따라 각자, 혹은 가족끼리 원담에서 어로 활동을 한다. 원담에서 잡은 어획물은 자기의 몫을 빼고는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 이웃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주면서 함께 사는 미덕을 실천했다.

제주 사람들은 과거 대동정신을 중요시 여겼다. 이 대동정신은 자연적으로는 가뭄과의 싸움, 외부적으로는 섬에 침략한 적과의 싸움, 내부적으로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섬의 탐관오리들과의 싸움 때문에 상생하려는 협동의 정신이 배양된 것이다.

공동체 사회란 빈부의 격차가 적은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 삶의 평등선이 눈에 보이는 사회인 것이다. 일상 노동에서의 수눌음, 상장례에서의 고적, ?녀공동체에서의 궐(벌금), 협업과 분배 등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제주의 정신세계는 원담에도 반영돼 있다.

산업사회는 새로운 문명사회를 불러왔다. 원시, 전통, 대동이라는 말은 이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원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징성은 오늘날 우리에게 민주적인 삶과 상생의 정신을 전해주고 있다.

옛 원담을 생각해 보라. 옛 사람들은 원담에서 돌을 일려 해산물을 잡은 뒤 그 돌을 원래의 위치에 놓았다. 내일을 기약하는 자연 생태의 순환을 위해서이다.

지금의 사람들이 다녀갔던 원담을 보라. 돌이 들려지고 훼손 된채 그대로 방치됐다. 이기심, 내일이 없는 삶의 모습이 보인다. 원담은 해안도로가 개통되며 묻혔고 돈 들여 복원한 원담은 그 기능마저 잃어버렸다. 또 마을에서 바다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원담은 방문객의 형식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광용 행사물이 되고 있다.

삶의 조형물인 원담이 사라지면 제주의 바다는 제주인의 정신과 제주의 아름다움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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