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로 한 여성이 찾아왔다. 직원이 응대를 하려는데 무언가를 꺼내 든다. 태블릿PC다. 뭘 하나 싶어 지켜보니 태블릿PC로 어느 여성과 영상통화가 연결되자 책상에 올려놓고 수화를 한다. 이내 화면 속 여성이 수화를 통역한 내용을 음성으로 전달해 준다. 순식간에 벌어진 수화통역 장면이다.

잠깐 수화를 배운 적이 있다. 수화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기능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의사소통을 손으로만 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수화를 배우는 내내 ‘세상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삶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청각장애인과 세상을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로서 ‘수화’의 존재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마침 지난 7월 말 제주특별자치도 수화통역센터 개소 2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20년 전인 1997년 7월 26일. 제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화통역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의 개소로 수화통역이 필요할 때마다 통역이 가능한 몇몇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사정하고 부탁해야 했던 청각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로서 공식적인 통역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통역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수화통역센터의 개소는 당시 전국의 청각장애인 사회에서 일대 사건이 되기에 충분했다. 현재는 전국에 200여 개의 센터가 운영될 만큼 ‘수화통역’이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서비스가 되었다 하니 20년 전 제주에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수화’가 낯선 ‘손짓’이 아니라 공식적인 또 하나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공식행사에 수화통역이 의무화 되고 자원봉사로 취급받던 수화통역활동이 전문적인 활동으로 인정받게 이르렀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청각장애인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한 우리 사회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수화통역센터 개소 이후 20년이 지난 2017년 7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수화언어 사용촉진 및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활성화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것이다. 지난해 ‘한국수화언어법’시행에 따른 적극적인 조치다. 조례에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 가족을 위한 의사소통 지원, 청각장애인의 정체성과 문화육성을 위한 내용이 세심하게 반영되어 있다. 제주에서 또 한 번 청각장애인 복지의 역사를 일보 전진시킨 셈이다.

청각장애인들은 한때 헌혈조차 거부당해야 했다. 수화통역사를 통해 헌혈 의사를 정확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지침을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순수한 마음에 헌혈을 생각했던 그들에게는 정말 황당하고 비참한 상황이었으리라.

무지가 낳은 편견과 차별은 늘 그렇게 힘없는 소수자들을 배제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늘 그 ‘배제’를 ‘배려’로 포장해 왔다.

어느덧 지방자치단체에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은 물론 청각장애인 사회의 문화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배제의 틀을 깨고 특별한 배려가 아닌 청각장애인 삶 자체에 대한 인정과 존중의 의미로서 이번 조례의 제정은 가치가 있다. 그래서 감히 청각장애인에 대한 ‘공감’의 결과물로서 ‘공감 조례’라 이름 붙이고 싶다. 공감이 쌓이면 연대가 되고 그 연대가 쌓이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우리 사회 더 많은 공감들이 쌓여 제주가 더 새로워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공감 조례’, ‘공감 정책’들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