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나의 눈물이 그들에게 죄가 될 것 같아”…참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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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책 소개=별을 스치는 바람
태평양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그때, 차가운 감옥에서 간수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시인 윤동주와 간수는 어떤 관계였을까? 잔인한 전쟁, 자유에 대한 시인의 갈망, 작가의 예리한 손끝에서 시인의 삶과 죽음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안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피어난다.


▲대담자
김지희: 초등학교 돌봄 전담사. 제주귤나무 감귤농원 직거래 판매를 하는 농부. 중문과 남원을 오가는 바쁜 일상 속에도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도서관 독서동아리에서 한 달에 두 번, 열심히 책 수다를 떨며 삶의 에너지를 느낀다.


문금순: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중문에서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주말엔 억척스러운 농부가 된다. 좋은 사람,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가장 행복하다. 지역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책으로 여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자 고심 중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으로 숙성시킨 윤동주의 시 항아리
광복을 6개월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1945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인의 생애 마지막 1년,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 형무소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며 저항시인으로 정형화 된 그를 27세 청년으로 되살려낸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시와 책의 힘을 믿었던 윤동주, 그의 순결한 영혼과 뜨거운 삶의 열정이 살아온다.


문금순(서귀포시민의책위원회 위원, 이하 ‘문’): 이 책을 읽은 전체적인 느낌은?


김지희(이하 ‘김’): 얼마 전 이준익 감독의 ‘박열’ 영화를 보았습니다. 일제에 저항한 청년의 스토리를 다룬 ‘박열’은 이준익 감독이 지난해 선보였던 영화 ‘동주’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되는 박열의 시. 동주영화와 윤동주의 시. 그리고 이정명 작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은 책과 시를 오롯이 사랑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정명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 보았어요. 1판 16쇄라는 인기에 놀랐고 후반부로 갈수록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반전, 긴장감, 설렘으로 잠시도 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책이 2017 이탈리아 문학상 최종후보에 올랐구나하고 감탄했지요.


문: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김: 작가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소설 곳곳에 보물처럼 책에 대한 사랑을 숨겨놓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놈들은 그의 교회당을 갉아먹고 그의 고향집을 갉아먹고, 보들레르를 갉아먹고 발자크를 갉아먹었다.”(2권 p147)를 읽으면서 발자크의 ‘바느질하는 소녀’가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숨은 그림을 찾는 기분이랄까? 작가의 숨은 의도를 얇게나마 한 장 벗기는 느낌이었죠.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이정명 작가가 세밀하게 설계한 건축물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현관 앞 작은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느낌이랄까요. 빈틈없이 잘 짜인 문장과 글을 쓰기 위해 수집하였을 자료들, 그리고 목숨을 내걸고 윤동주의 시를 보관하였을 정병욱 교수 이야기 등은 허구인 줄 알면서도 감동을 하고 가슴 한편이 아리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게 했습니다.


문: 이 책에 푹 빠지신 것 같네요. 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김: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입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중략(…)

 

▲ 서귀포시 중문초등학교에서 독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김지희씨(사진 오른쪽)와 문금순 위원.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권(p286). 2권(p238)에 각각 실려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낭송해봤어요. 한 번. 두 번.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저미는 느낌 아시지요? 같은 시를 두 번 실은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문: 1권의 소제목 중 ‘가슴에 맺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김: 어머, 통했네요(웃음). 이 책의 매력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점이죠. 저는 와타나베 유이치가 독백한 부분으로 헌책방을 운영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는 기진한 책에 생명을 불어넣고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책에 안식을 선물했다. 죽은 책들은 어느 집 불쏘시개나 겨울밤의 따끈한 군고구마 봉투나 철없는 아이의 코를 닦는 휴지가 되었다.”라는 문장입니다.(1권 p48)


지금 같으면 우리 아들만 한 열일곱 소년이 전쟁이라는 이유로 학병이 되어야 하는 게 어미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죠. 지금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겠지만, 불쏘시개로 책을 쓰거나 코 닦는 휴지, 변소에서 북북 찢어 사용했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수많은 기억의 물방울 중에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물방울을 흘려보내는 유이치의 마음이 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면서 내 유년을 회상하며 미소 지어보기도 했습니다.


문: 윤동주를 평해 본다면?


김: 어떤 이는 독립운동가인 윤동주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시인 윤동주가 좋습니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한 사람. 빼앗긴 조국에서 자유를 그리워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리움에 사무쳐 괴로웠던 외로운 시인. 차디찬 타국의 형무소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버린 가엾은 시인.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중에서)

 

시인은 시로 이야기하지요. 시는 묵힐수록 숙성되는 된장 같아요. 꼭꼭 숨어있는 시어의 의미를 찾아내려면 많이 묵히면서 하나하나 끄집어내야죠. 독립운동가로서 윤동주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시인 윤동주의 묵혀둔 시 항아리 속에는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있고 잃어버린 조국이 있고, 추위와 굶주림과 외로움 속에 죽어간 형제들이 있고, 모진 고문 속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 윤동주는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문: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을 든다면요?


김: 개인적으로 장편 소설에서 윤동주의 시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했습니다. 교과서에서나 시집에서 만났던 그의 시들은 ‘아름답다’, ‘고결하다’라고 막연하게 느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시 한 편 한 편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 시를 쓰던 상황이 보이고, 시인의 고뇌와 아픔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언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주의 말은 마른 장작에 날아드는 도끼처럼 묵직하고 파괴적이었다. 그 말은 한나라의 언어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를 담은 존재의 헌장이며 한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선언이었다.”(2권 p271)  너무 멋있죠?


스기야마가 동주에게 또 이런 말도 합니다. “네 시는 너 자신의 언어니까”


윤동주 시인의 언어가 시라면 나의 언어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어요.


문: ‘별을 스치는 바람’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김: 이 소설에서 역사적 사실은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생체실험 등 고문을 받다가 옥사했다, 이 정도가 아닐까요? 작가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개연성 있는 인물들을 만들어내어 스토리를 구성합니다. 소설은 허구가 매력의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윤동주 시인을 너무나 아끼는 두 사람 간수 스기야마 도진과 와타나베 유이치가 있잖아요. 스기야마 도진은 윤동주를 먹물 먹은 지식인, 쓸모없는 시 따위를 쓰는 불순분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645번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호칭이 히라누마 도주로 바뀌고 마지막엔 윤동주라 불러주지요.


심문실 지하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그러기 위해 직접 땅굴을 파는 모습은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싸움 이야기도 그렇죠. 연에 윤동주의 시를 직접 썼다는 이야기는 소설이 허구를 품고 있기에 가능합니다. 생체실험의 도구로 죽어가는 윤동주를 보면서 도움을 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와타나베 유이치의 모습 역시 소설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 동주가 죽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나는 돌아서 걸었다. 나의 눈물이 그들에게 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2권p245)


이 고백이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 일본이 그 시절 나라 없는 설움으로 죽어간 조선인에 대한 참회의 고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 이 소설의 시대적 의미를 말한다면요?


이: 역사, 정치 등의 이야기보다는 독서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의 정서, 시인의 정서를 풍부한 상상으로 전달해 준 점입니다. 작가와 시를 이런 식으로 풀어서 보여준다면 시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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