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 작가가 네팔 안나푸르나 어라운드 트레킹에서 최고 정점인 해발 5416m에 오른 모습.


“걷다보면 고민해왔던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죠.”

인생 후반부에 걷기여행으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이영철 여행작가(60). 제지업계 1위인 한솔제지에서 상무이사까지 오른 그는 2011년 말 29년을 몸담았던 회사에서 퇴직 통보를 받았다.

여느 대기업 임원처럼 야근과 주말 근무로 치열하고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퇴직 후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는 괜찮다’며 호기를 부렸지만 허세였다. “뭐 하고 지내냐”고 물어오는 안부전화가 얄미웠다.

백수가 된 첫해인 2012년 1월 1일 경남 남해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3박4일 동안 남해안 70㎞를 혼자 걷다보니 근육세포와 뇌세포가 다시 깨어났다. 잡념이 사라지고 비로소 자기 위안과 평온이 찾아왔다.

이어 망설임 없이 네팔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도전했다. 당초 베이스캠프(4130m)까지만 가려다 라운드 코스를 택했다.

해발 5416m를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가 일반인에게 허용된 코스다. 그 이상은 산악인들만 오를 수 있다.

등반 중 고산병으로 숨이 차오른 데다 뇌에 혈액공급이 안 돼 두통이 밀려왔다.

하산 길은 너무 가팔라서 두려움이 찾아왔다. 눈물이 절로 났다. 안나푸르나에서 10일간의 트레킹은 해냈다는 자신감을 안겨줬다.

회사와 집 밖에 몰랐던 그는 퇴직 후 5년 안에 세계 10대 트레일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완주를 했다.

전 세계 12개 나라에서 총 2829㎞를 걸었다. 하루 10시간을 걷고 난 후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렸더니 응원을 보내는 팬들이 나왔다.

그는 출판사의 제의로 산티아고 순례 여행 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고 저녁마다 원고를 썼다. 지난 5년간 4권의 여행기를 펴냈다.

처음 출간된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는 교보문고의 여행서적 판매순위에서 7위에 올랐다.

세계 10대 트레일 종주는 국내 최대 산악잡지인 ‘월간 산’ 금년 1월호에 신년특집호로 실렸다.

지난달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구성한 코리아둘레길 민간추진협의회 위원 12인 중 1인으로 위촉됐다. 

그는 최소한의 경비로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걷기여행을 추천했다.

산티아고 순례길(782㎞), 몽블랑 둘레길(170㎞), 영국 횡단(315㎞) 등 배낭 하나 둘러매고 시작한 걷기여행이 세계 10대 트레일을 완주한 여행작가라는 명함을 안겨줬다.

“산티아고에선 한 달 내내 먹고 자는 것을 빼고는 10시간 이상을 걸었죠. 매일 걷다보니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죠. 가족과 친구관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그 땐 왜 그랬을까’라며 지난 온 삶을 복기하게 됐죠. 걷고 걸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인생을 설계하게 됐습니다.”

그는 “거창한 관광지를 가거나 해외 패키지 여행보다 제주 올레길이나 동해안 및 남해안 둘레길을 걷는 것이 훨씬 낫다”며 “여행은 돈과 신분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풍경에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는데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