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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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자/수필자

취미도 오래 하면 자기만의 모티브를 갖게 된다.


내가 오랫동안 빠진 취미는 혼자 취해서 노는 이른바 ‘자파리’ 수준의 놀이이다. 해마다 여름 땡볕이 시작되면 광목에 감물을 들이고 목걸이와 생활소품들을 만들었다. 또 헌 바구니를 풀바름해서 보름구덕을 만들거나, 알록달록하고 둥그렇게 만든 질빵을 벽에다 걸어놓고 감상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예전 제주 어머니들의 노동문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테마를 정하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서 한참을 놀다 보면 방향은 늘 한 곳으로 흘러갔다. 뒤늦게야 기물들이 간직하고 있는 제주 어머니들의 흔적인 ‘자강정신’이 나를 매료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하게 삶을 헤쳐나간 그들의 삶을 나는 찬미하고 있었다.


얼마 전 딸과 함께 통영에 다녀왔다. 대전에서 출발한 버스가 통영에 이를 무렵 차츰 해가 저물어 밖이 깜깜해졌다. 흘낏 보니 버스 차창이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었다. 차창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오래된 기억의 단편을 떠올리게 했다.


이십 대의 한 장면으로 몹시 방황하고 절망하던 때였다. 혼자 버스를 타고 경상도 방면으로 가고 있었다. 버스가 흔들리는 대로 무기력한 마음과 무거운 머리통이 차창에 기대어서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버스가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 밖을 보니 차창이 어둠에 의해 거울처럼 변하여 나를 비추었다. 가만히 내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살아갈 힘이 났다.’ 당시 내가 입었던 옷은 목이 늘어진 까만색 티였다. 머리의 모양과 기분이 어땠는지 세세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강렬한 순간이었다.


지나간 나의 얘기를 들은 큰딸은 깔깔 웃으면서 ‘지금까지 들었던 엄마의 자뻑 시리즈에서 이번 얘기는 순위권에 속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덩달아 신나게 웃으면서 ‘왜, 자기 모습에 빠진 나르시스 그런 것 같아?’ 변명 아닌 변명을 딸에게 늘어놓았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고속버스 안 차창에 비친 내 모습에는 그 어떤 특유한 느낌도 없었다. 그저 편안한 표정의 여인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 이제 희망을 찾아 헤맬 나이는 아니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다. 버스 속에서의 짧은 성찰은 이번 여행의 목적지였던 박경리 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나의 감정을 주도했다. 젊은 시절 몇 번이나 읽고 읽기를 반복했던 책의 저자를 만난다는 것이 왠지 묵직할 것 같았는데 홀가분하고 편안했다.


청춘이었던 그때, 아마도 내가 어두운 터널 속 차창 속에서 잠깐이나마 자신을 객관화해서 본 것 같다.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나를 감싸고 있던 생명의 빛이었을 게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꺼지지 않는 빛이었고 나를 초월한 무엇과도 연결되어있었다.


잠시 후 터널이 지나자 밖이 환해졌고, 나는 터널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기왕지사 남쪽의 여행을 즐기리라는 두둑한 배짱이 생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파릇파릇하게 생기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었다.
며칠 전 만난 둘째 오빠에게 머리카락을 물들일 천연염색약을 구해드렸다. 느닷없는 병고로 인해 오빠는 한동안 머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부터 다행히 머리가 새로 자라났는데 희끗희끗한 새치였다. 요즘엔 오빠의 안색이 좋아져서 염색만 하면 십 년은 젊고 건강하게 보일 것 같았다. 이튿날 올케언니에게 전화했더니 염색이 아주 잘 되었다고 했다.


오늘은 오빠가 서울 병원에서 검진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다. 저물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한 번쯤 창가를 볼 것이다. 그가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으면 한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생명의 빛을 보고 그 빛을 키웠으면 한다.


감히 나는 말한다. 약 중의 약은 희망이고, 노래 중의 노래는 자신에게 불러주는 응원가라고 말이다. 희망과 자강정신은 내 취미 생활의 좋은 모티브였다. 그것은 절망을 이기고 생명의 빛을 키우는 좋은 땔감이었다. 오늘도 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희망의 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꾼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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