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문득 놀이 형상으로 다가오곤 한다.

저녁 시간이면 동네 코흘리개들과 어울려 갖가지 치기 놀이를 즐겼었다. 자치기, 못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그러다 상현달이 떠오르면 정신없이 술래잡기에 빠지기도 했다. 지칠 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야성으로 자랐다.

때론 옛 기억 속의 말을 재생시키곤 한다. 누가 지었는지 모른 채 따라하며 키득거린 석 줄짜리 대사.

“야, 다이도 바이다.” (야, 달도 밝다.)

“마이나 또이또이 해.” (말이나 똑똑히 해.)

“두이다 바이보이다.” (둘 다 바보다.)

그때는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르고 남을 바보라고 놀리는 것이 너무 우스웠다. 커서야 발음을 잘못하는 일본인을 빗댄 놀림임을 알았다.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본인에 대한 원한을 은근슬쩍 담아낸 서러움임이 묻어 있다.

세월이 흐르는 만큼 역사도 흐른다. 개인이나 가족, 사회나 국가의 역사를 만들기도 하고 기록하기도 한다. 함께 흘러가면서도 의식의 내면은 천차만별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역사의식을 키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역사란 거인들의 몫이요 관심 있는 자의 책으로 여겼을까.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공동체의 문화가 되고 역사의 바탕이 됨을 간과해 온 것이다.

8월은 잠든 역사의식을 깨우고,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의미를 되새기며 현재를 튼실하게 세우는 달이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교훈을 통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데 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일 텐데, 고난을 겪은 세대들이 사라져감에 따라 태극기의 모습도 줄어들고 애국이란 말도 시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도 스포츠에서 한일전만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민족의식이 표출되는 걸 보면 역사의 상흔은 쉬 사라지거나 치유될 수 없음이리라.

“네가 잘못했잖아. 진정으로 사과해.”

“지난번에 했잖아. 더 이상 못해.”

개인이나 국가 간에 이와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현상을 두고도 관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듯, 해법도 각양각색일 테다. 복수하고 싶은데 상대가 나보다 힘이 세다면 난감해질 것이다. 설령 힘이 강하더라도 마음까지 빼앗을 순 없는 노릇이다. 잘 알려진 말처럼 잊진 말고 용서하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일전에 읽은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미운 사람 복수하는 방법이다. 동네 아줌마 모임을 다녀오면 화가 치미는 여인이 있다. 항시 밉살스럽게 말을 하며 살살 신경을 긁는 회원 때문이다. 화술이 뛰어나고 음흉한 멘트가 주특기여서 공동전선을 펼쳐도 당해낼 도리가 없다. 궁리 끝에 복수의 실마리를 찾았다. 보다 큰 소리로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꾸밈이 아니라 진실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개인의 삶도 뜻대로 이끌기 어렵듯이 나라의 역사도 소망이나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전쟁은 인류의 적이라고 누구나 말하지만 현실엔 끊임없이 악이 펼쳐진다. 선악이나 정의라는 것도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외 정세가 불안하다. 북핵 문제로 촉발되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섬뜩한 말다툼이 언론을 도배한다. 국제사회가 모둠치기 하겠다는데도 콧방귀 뀌는 두둑한 배짱을 내보이고 있다. 세계인들이 우리들의 평온함을 보고 놀라고 있다 한다. 너무 안일한 행동이나 무딘 생각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남의 집 불 구경하듯 하는 마음이니 설마라는 우물에 갇힌 건 아닐까.

국가의 안보마저도 진영 논리로 갈라진다면 기다리는 것은 비극이다. 위기일 땐 국가가 먼저라는 단합된 역사의식이 반드시 깨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