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 제주신보
  • 승인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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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여러 해 전 경상북도 순흥에 있는 금성대군의 위리안치지(圍籬安置地)를 찾아간 적이 있다. 중심의 깊이가 어른의 키를 넘을 듯하고 직경이 5-6미터 정도인 그릇 형태의 흙구덩이가 있고, 그 주변은 가시덤불로 둥글게 울타리를 쳐놓았다. 조선의 왕 세조가 자신의 동생 금성대군을 가두었다가 죽게 했다는 그 장소이다.

철조망보다 더 든든한 가시덤불에 갇힌 구덩이를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치와 권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게 했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실감한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여행방식이 있다. 20세기 말에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과거의 재난 지역을 찾아가 역사적 교훈을 받으려는 여행 방식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일본의 히로시마,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등이 대상 지역이 된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로 폭발사고가 일어나 만 여 명이 희생되고 40만명 이상이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사고 중심지역은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정책적으로 다크 투어리즘을 권장해왔다.

우크라이나가 권장하는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과 불행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인도적 차원이 아니다.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긴 했지만 관리만 잘 하면 원자력 발전을 확장해간다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홍보 차원에서 권장해왔다. 값싼 전기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경제적 필연이 논리적 근거와 토대가 된 셈이다.

일본의 후쿠시마는 우크라이나의 다크 투어리즘을 본받고 싶어 한다. 죽음의 땅으로 각인된 후쿠시마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려는 의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을 확장해갈 수밖에 없다는 경제적 맥락에서다.

일반적인 다크 투어리즘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라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의 다크 투어리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이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야말로 어두운 여행’인 셈이다.

정치인들도 다크 투어리즘과 비슷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지나온 정치적 과거를 향해 주기적으로 팀을 짜서 여행을 떠난다. ‘지금까지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열어가겠다’는 수사(修辭)와 홍보와 함께 다크 투어리즘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 초기에는 상식적인 다크 투어를 생각했을 듯하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으니까 미래를 위해 당연히 이 어두움을 걷어내야 한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초기의 이상(理想)주의는 삶의 논리로 무장한 현실주의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이상주의는 현실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

위기와 파국이 오가는 시기에 이상주의자들에게 한동안 발언 공간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런 이상주의가 역사 현실과 어떤 관계 속에 머물고 또 떠나곤 했는지? 그런 과거 역사를 향한 다크 투어리즘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대한민국의 요즘이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긴장 관계를 어떻게 미래를 향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심하는 역사 여행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그냥 앞으로만 가려는 이상주의는 멀리 가기 어렵다. 역사 여행자가 만나는 현실은 이미 지나간 현실이다. 과거사 여행에서 만난 현실 속에서 미래로 가는 길을 찾으려는 여행자들이 많은 만큼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한동안 앞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