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 선생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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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 때 67세의 노구를 이끌고 청나라에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던 척화(斥和)파의 거두, 청음(淸陰) 김상헌 선생이 청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다.

▲청음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자 안동으로 낙향, 깊은 골짜기에 목석헌이라는 초가집을 지어 은거한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인조가 종1품 숭록대부의 벼슬을 내리지만, 그는 사양 상소를 올리며 벼슬을 받을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세 가지 죄를 열거했다.

모든 대신이 적과 화친해 남한산성에서 나갈 것을 권했으나 자신만 산성을 사수해야 한다고 한 죄, 항복 문서를 찢어버리고 묘당(조정)에서 통곡을 한 죄, 전하와 세자들이 오랑캐 진영에 항복하러 나갈 때 말 앞에서 죽지 못하고, 병 때문에 수행도 하지 못한 죄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큰 죄를 짓고도 형벌을 면하고 있는데 어찌 처음부터 끝까지 말고삐를 잡고 전하를 호종(護從)한 여러 신하와 같은 은상(恩賞)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벼슬을 사양했다.

화친(항복)을 주장한 신하들과 함께 굴욕적인 벼슬을 받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항복한 나라의 임금이 신하들에게 상과 벼슬을 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청음은 이 상소를 통해 인조에게 간곡한 충언도 올렸다.

“추위와 더위가 없어지지 않는 한 갖옷(가죽옷)과 갈포옷(칡 껍질로 짠 베옷)을 없앨 수 없으며, 적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전쟁과 수비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뜻을 가다듬고 요새의 방비를 더욱 닦으시어 국가로 하여금 두 번 다시 욕되지 않게 하십시오.”

오(吳)나라 왕 부차와 월(越)나라 왕 구천이 복수를 위해 섶나무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먹으며 절치부심했던 고사를 인용, 국방을 튼튼히 하고 전쟁에 대비할 것을 간청한 것이다.

▲한반도 안보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처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며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우리의 자주 국방력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충분히 억제할 능력이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때 답답해진다.

380년 전 피 끓는 심정으로 결사항전과 유비무환을 외쳤던 청음 김상헌 선생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작금의 안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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