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의 빨래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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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콸콸 솟아나는 샘물. 손발이 시리다.


퍽퍽 방망이 소리.


찰박 찰박 빨래 헹구는 소리.


첨벙 첨벙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샘물 따라 흘러간다.


동네 갓머리 바닷가 샘터에는 물 긷고 빨래하러 나온 아낙네들의 수다로 왁자하다. 한쪽 귀퉁이에는 저고리를 벗은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등 등물을 받고 있다. 누구 한 사람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 없다.
예전에는 큰누나가 시골집에 자주 들렀다. 들을 때마다 누나는 빗자루를 들고 방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쓸어내고, 걸레로 말끔히 닦아내었다.


오늘도 누나는 마당 한 구석에 있는 빨래터에서 걸레를 빨고 있다. 때 묻은 걸레가 잘 빨아지지 않는가 보다. 


“어머니! 집에 방망이가 없어요?”


“왜 없어, 있지.”


“어디요?”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저기, 장독대 옆에 끼워두었다.”


빨래 방망이를 꺼내든 누나, 때 묻은 걸레를 퍽퍽 두들기다 한참 동안 멈췄다.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갓머리 바닷가 샘터는 찌든 살림살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 곳이자, 마을 아낙네들의 입담이 펼쳐지는 장소다.


자식 얘기, 남편의 주벽, 시어머니의 흉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샘물에 빨래를 헹구고 방망이를 치면서 아낙네들은 시집살이의 고달픔도 함께 두들기며 비벼 씻어냈다.


따라 나온 철부지 아이들 속에 누나도 끼어 있었지. 어머니의 시름도 모른 채 물장난에 골몰이다.


“큰 얘야!”


“예”


“빨래 아직 멀었냐?”


“다 돼 가요.”   


어머니의 정성이 든 빨래 방망이를 보면서, 오늘따라 왠지 정답게 보인다.


매립돼 버린 갓머리 바닷가 샘터, 빨래 소리도 멈춘 지 오랬지.


산다는 건, 기억을 되살려 보는 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려서가 아니라, 나에게 또 다른 시간이 온다면, 나는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것 같다. 콸콸 솟아나는 샘물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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