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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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게 된다. 전쟁의 잔혹함과 이중성, 전쟁 와중의 삶과 사랑을 엿본다.

‘나폴레옹이든 알렉산드르든, 지도자 한 사람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지도자는 국민의 여망을 이용할 뿐이다. 또한 전쟁은 상류층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일반 국민에게 더 가혹한 징벌을 내린다.’

‘전쟁과 평화’를 통해 톨스토이가 전하는 메시지다.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전운이 감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이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그 해법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利害) 상충으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전쟁은 흔히 필요악이라고도 한다. 국제적인 난제 해결을 위해서 강대국들은 전쟁 카드를 꺼내곤 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걸 저지하는 문제는 이 시점에서 국제적인 초미의 난제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국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초기 단계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 난국을 맞았으니 이제라도 북핵 저지의 결사적인 결기를 국제사회에 내보여야 한다.

한반도를 초토화했던 6·25는 내부 혼란으로 냉전 시대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초래한 전쟁이었다. 다시 신(新)냉전 시대의 난국 타개를 위해 한반도가 희생양이 된다는 지적이 분분하다. 우리의 생존을 주변 강대국들이 농락할 수도 있다는 시사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과거사 논쟁으로 날밤을 새운다. 세계사에 보기 드문 속도로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그 저력은 잦아들고 법과 원칙이 실종되고 무법이 판을 친다. 악은 권력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법을 바로 세워야 할 권력이 제 역할을 방기하는데서 초래되는 난장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볼모로 살아야 할 위급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도 위정자들은 편 가르기다. ‘설마’하다 파국을 맞은 우리 역사의 위난이 어디 한두 번인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은 국민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 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의 간접 고통조차 겪지 못한 전후(戰後) 세대가 주류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말과 행동이 난무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를 잃고 전쟁 참화까지 겪은 국민이다.

국가 안보에는 온 국민이 하나로 대처해도 부족하다. 우리끼리 싸우는 건 외세로 하여금 우릴 우습게 여기도록 만드는 자해행위다. 우리를 만만하게 여기면 외세는 또 다시 우리를 넘본다. 더구나 이런 위중한 정세에 적폐와 응징의 우격다짐이라니….

민주주의 종주국인 영국의 정치사례에서 우리 정치·사회의 적폐 논쟁을 성찰해 본다. 대처 총리가 집권했을 때 영국의 보수당 정권은 기간 산업의 국유화 정책을 민영화로 바꿨다. 10년 후 들어선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정권은 대처의 조치를 계승하고 제3의 길을 모색했다. 이념이 다르지만 지난 토대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쌓은 것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수정 보완하면서 발전시켜 나갔다. 그래야 역사와 더불어 국력이 축적되고, 국위가 선양된다.

지금 우리가 청산해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보다는 작금의 이념 대립과 정파 싸움이다. 과거의 행적을 부정하고 적폐시하는 건 퇴행이다. 평화와 번영은 실수나 실패까지도 경험의 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정치에서 실현된다. 정치 보복은 후환을 남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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