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여적(餘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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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책을 내는 걸 ‘상재(上梓)’라 한다. ‘재(梓)’는 가래나무로 재질이 굳고 좋아 예로부터 글을 새기는 판목으로 써 왔다. 이 가래나무에 각자(刻字)하는 것에서 출판의 뜻으로 전의(轉義)한 말이 상재다.

단단한 판목에 한 자 한 자 글자를 새기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손끝이 닳아 모지라지고 손바닥엔 군살이 박이고, 그 고통의 끝자락으로 글자가 파인다. 출판은 뼈를 깎는 각고정려(刻苦精勵)의 산출물이다. ‘심혈을 기울인다.’ 함이 이 경우에 딱 맞는 말이다. 작품집을 작가의 ‘분신’이라 하는 연유다.

그래서일까.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처럼 두려운 게 없다. 금이야 옥이야 고이 키운 딸자식을 남의 집에 시집보내는 부모의 노심초사가 그러할 것이다.

그래도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은 열망에 몇 년을 두고 써 온 글들을 모아 작품집을 내 저자가 된다. 제 이름으로 나온 책을 손에 든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다. 그 순간의 감격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한다.

그 감동 때문에 작가는 글을 쓰고, 없는 돈을 털어 책을 낸다. 쓰고 싶은 순수한 욕망에 붙들려 글을 쓰고, 쓰고 나면 또 한 번 이름을 남기고 싶어 책을 내게 된다. 그런 열정으로 살아 명색 작가다.

작품집 몇 권을 내고 주춤했더니,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출판사에서 ‘현대수필가 100인선’을 내 주었다. 출판사가 추진하는 사업에 선정된 것이니 개인적으로 영예요 길사다. 거기다 공으로 나온 책, 수필선 『구원의 날갯짓』, 기뻤다.

저자 지분이 제한적이라 몇몇 문우와 지인들에게 보내면서 격식을 바꿔, ‘혜존(惠存)’이라 않고 ‘~님께’라 했다. ‘받아 간직해 주십시오’라 하면 굳이 당부하는 게 되니, 편안하게 받아 일독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려 한 것이다. 끝에도 ‘저자 삼가’라 해 한글식을 내세웠다. ‘근정(謹呈)’이라거나 ‘드림’이라 하는 게 관행이지만, 새로 선보였다. ‘삼가’는 삼가 보낸다는 뜻이니, ‘드림·올림’보다 예를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은 말이다.

사실, ‘드림’이라 함은 상대에 따라서는 ‘올림’이라야 맞는 것인데, 두루뭉수리 넘어가는 식이 되고 있다. 드림은 아무래도 올림보다 한 단계 덜 높인 말 아닌가.

책의 간지에 쓰고 나서 봉투에 넣어 주소를 쓰려니 번거롭긴 해도 일일이 육필로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아들이 수작업을 도와 효도할 기회도 됐으니, 이건 또 의외의 덤이다.

문우들로부터 축하 메시지와 전화가 답지했다. 장문의 문자로 정성을 들였는가 하면, 키워드들도 다양했다. ‘열정, 존경, 놀랍다’에 이르러 보내온 이의 진정을 헤아리게도 됐다. 이럴 때는 갑자기 ‘문자’가 목소리로 일어나 울림으로 온다. 시인·작가들에겐 이런 특유의 인간미가 있어 훈훈하다.

노 시인 한 분은 전에 그랬듯 또 원고지에다 꾹꾹 눌러 써 가며 손편지를 보냈다. 삼화지구 아파트에 사는 구순의 수필가는 요즘 집으로 찾아온단다. 당신을 잊지 않고 책을 보냈다 하질 않는가. 문학의 끈은 쉬이 삭지 않는다. 어르신을 어찌 잊으랴.

축전을 보낸 이가 있다. ‘수필과비평작가회’ 회장을 지낸 오승휴 작가. 전보는 특별한 것이라 놀랐다.

‘우리나라 현대 수필가 100인선에 제주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시어 수필선집 ’구원의 날갯짓‘을 발간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불타는 열정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앞날에 더 큰 영광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장문의 전보다. 날개를 달아 주었으나, 어깨가 무겁다. 좋은 글을 써야 하는데, 쓸수록 힘드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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