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5도의 천혜향 하우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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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국제PEN한국본부제주회원

최근 친구의 ‘천혜향(수확이 늦는 감귤의 만감 종류) 하우스에서 일을 도왔다. 감귤은 60여 종이 있어서, 상품성이 있는 만감만도 열 종류가 넘는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세또까, 하루미, 네블오렌지, 세미놀, 남향 등이다.

이제껏 나는 남의 농사일을 도와줘 본 일이 없다. 그는 막역한 친구로서 농사의 적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고민을 거들고 싶었을 뿐이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헛일이 된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며, 말년에 농사나 해보자는 생각은 무모하다. 특히 비닐하우스 농사는 무경험자가 섣불리 덤비지도 못할 영역이다. 물론 노지 농사보다 하우스 농사는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서야 소득도 많게 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감귤은 제주 농가의 80%, 대략 3만 가구에 가깝고, 농사꾼의 90% 이상이 대부분 노지 밀감을 재배한다. 노지밀감은 옛날 같지 않아서 고품질이 아니면 처리에 애를 먹는다. 옛날에야 파치 귤도 없어서 못 팔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 중에 퇴직하면 ‘농사나’ 짓겠다는 사람을 가끔 보는데, 큰 착각이다.

며칠 전의 조선일보에 1면 톱으로 올해 지방직인 9급 공무원 1만명을 채용하는데, 22만명이 몰렸다고 한다. 육지부에서도 논과 밭작물을 충분히 소유한 사람들이 있을 터이다. 그래도 9급 공무원에 두세 번씩 도전한다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제주의 감귤농사도 70∼80대가 대부분이다. 감귤 1세대가 2세대로 넘어올 가능성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감귤과수원을 수천 평씩 가진 사람도 그 자녀가 9급 공무원의 영광을 안기를 바란다.

낮 무렵이 되자 친구의 하우스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갔다. 모든 하우스에는 재배관리를 위해서 온도계가 비치되어 있다. 폭염은 장난이 아니었다. 친구는 적과(열매의 일부를 솎아냄)를 했고, 나는 나무의 가시를 다듬는 일을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어려웠다.

가시가 컸으면 일이 쉬웠겠지만, 불과 2∼3㎜ 정도의 가시를 밀감 수확용 작은 가위로 다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시 다듬기는 방치하면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될 만큼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하우스 내 온도가 아주 고온일 때는 옆의 비닐을 일부분 말아 올려서 온도 조절을 하게 된다.

천혜향은 밀감보다 늦게 수확하는 만감 중에서도 제일 고가로 팔린다. 고생한 보람이 결실로 나타난 것일 뿐 그냥 고가가 아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폭염에 무리를 하다가는 대형 사고가 나기 때문에 친구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오후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해서 집에 왔는데 에어컨 바람이 참 시원했다.

친구는 하우스 작업이 노상하는 일이라, 어려운 것도 잘 참아내는 요령이 있겠지만 초보는 어림도 없다.

그래도 10년간 역시 만감인 ‘청견’하우스에서 일한 경험을 되살려 일을 했다.

하우스 여름철의 작업엔 큰 고역이 된다. 폭염에 견디지 못해서 쓰러지면 ‘하우스병’이라 해서 치료가 쉽지 않다.

천혜향이 나무가 좋아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불볕더위에도 하루에 고작 한두 그루의 나무 가시를 다듬는 공이 돈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쉽게, 공짜로 돈을 버는 일은 없다.

사노라면 무슨 일이든 때로는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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