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새로운 행정부에서 개혁의 일환으로 증세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무성하다. 경제학 교과서의 기초이론에 의하면 재벌·고소득자, 기타 일정한 물품에 대한 세금의 증감이 경제에 어떤 긍정적 효과 또는 부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에 대해 자세히 논하고 있다.

증세는 경기과열을 진작시키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고, 감세는 투자유도, 고용증대, 물품 소비촉진 등의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조세정책의 기초 원리에 의하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증세가 전방연관 효과 면에서나 후방연관 효과 면에서 모두 직접적으로는 경제에 대해 다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실업자·노인·장애인·비정규직의 보호를 위한 적극적 정책은 포기하라는 것일까. 이른바 보수주의자들도 사회복지정책, 기타 사회보장 정책에서 적극적 개혁·개선정책에 반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정책수행에 필요한 재원조달정책으로 초과이윤을 누리면서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재벌에 대해 투자를 유도하고, 고소득자의 양보를 얻어내는 정책을 수행하는 데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극히 일부 정치인·대재벌, 일부 고소득자들이 증세정책을 좌파와 연결시켜 비판하는 것은 반 복리국가적 언행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남북 대결적 냉전,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꼼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초과이윤을 얻고 있는 기업이나, 잘사는 고소득층이나, 못사는 저소득층이나 세금을 올리는 것에 두 손 들어 찬성할 일은 못 된다. 그러나 복지포퓰리즘 또는 좌파와 연결시켜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공동체 의식을 저버린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매몰돼 있는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사회가 창의적인 능력집단에 의해 발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어쩌면 경쟁에서 탈락한 무능자(?)의 덕이 아닐까. 그렇다면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를 같이 끌고 가야 하는 책무도 부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증세가 논의되다 포기했다고 들려오는 담뱃세 인상문제는 매우 유감스럽다. 경제학의 기초이론 중 강제저축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물가를 올려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가 담배는 폐암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그 소비감소를 계몽하고 있다. 담뱃세 인상은 국민의 조세저항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그 인상을 포기한 것은 다분히 정치 논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싶다.

즉 담뱃세를 인상하고, 그것이 소비자에게로 전가되면 정권 지지자를 돌려세우게 된다는 논리인 것 같다. 담뱃세의 증세는 대상자가 재벌과 고소득자에 비해 다수인 반면 재정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고 국민의 비판만 가중시켜 지지자를 잃게 된다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민주적 선거제도는 사회정의의 실현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 여론이 반대한다고 포기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어떤 바람직한 정책을 국민의 표를 얻는 수단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할 점도 있다. 그러나 약간의 결점이 있더라도 보완책을 강구하고, 국민을 설득해야지 당리·당략에서 반대로 일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정당이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정당에 몸담아 있는 자들이 리더나 특정인이 개인적 이해에 몰두해 있으면 나라 전체가 불행해 진다.

물론 세로스(Selus)가 말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민주사회에서는 정의(政義) 못지않게 형평적 사고와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변호사들의 배지가 저울인 것은 형평의 중요함을 말한다. 누적된 악습 내지 병폐가 형평(衡平)의 한쪽 날개로 위장되는 것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