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곤 作 시를 노래하는 자

이호엔 몽유병으로 떠도는 바다가 있다

벼랑 끝 파도소리 손재봉틀 돌릴 때

밤새껏 부서진 자리 가시낭꽃 피었다

 

휴대폰 안 걸리라, 등도 안 보이리라

자투리 시간들이 켜켜이 말아 올리는

저 험한 그리움 끝에 오의사 각시는 있다

 

그랬다, 그녀는 진맥한 번 받았을 뿐

그날부터 더 큰 열병 속수무책 감당할 뿐

저 혼자 겸상 차렸다 황급히 물려갈 뿐

 

왜 하필 그 옛집에 건너와 살았을까

소문에 뜬 오의사 각시 왜 벼슬처럼 받았을까

오늘밤 돋보기안경, 쇄빙선을 띄운다

 

문득 닻을 내린 인연의 저 이호마을

한 번도 못 토해본 내 가슴의 마그마여

가시낭 불빛으로 핀 네 이름을 꺾는다

 

-김윤숙의 ‘가시낭꽃 바다’ 전문

 

 

   
▲ 색소폰동호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단체 ‘제주에코색소폰앙상블’이 금빛 선율을 선보이고 있다 .

미당은 그랬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이에 빗대 나도 어느 문예지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문학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동인활동’이었다고. 그렇다. 도내, 그리고 도외에서 펼치는 동인활동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창작의 에너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폭염 속에서도 가을빛이 살짝 우러나오는 2017년 8월 26일 오전 11시.

 

서른여섯 번째 바람난장은 제주시 신산공원에서는 펼쳐지는 문학동아리 축제와 함께했다.

 

원래 바람난장이 가는 길이 예술 장르 간 소통의 한마당을 위한 것이듯, 문학을 하는 서로 다른 동아리들 간의 소통의 장을 함께 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구좌문학회, 제주동서문학회, 문학놀이 아트센터, 애월문학회, 사)제주시낭송협회, 제주아동문학협회, 제주여류수필문학회, 한라산문학동인, 현대문예제주작가회 등의 문예단체가 부스에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 제주시낭송협회 이금미 회장이 김광협 시인의 ‘유자꽃 피는 마을’을 낭송하고 있다.

이 이름표들이야말로 제주문학의 뿌리이자, 미래이며, 사회의 정신적 비타민을 전하는 공급처인 것이다.

 

(사)제주시낭송협회 이금미 회장이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새로이/

 

파아란 바다가 촐랑이고/ 바다위론 똑딱선이 미끄러지더이다‘로 시작되는 김광협 시인의 ’유자꽃 피는 마을‘을 낭송했고, 김정희 시낭송가가 김윤숙 시인의 ’가시낭꽃 바다‘를 낭송하는 동안 200여 명의 관객들은 마치 ’몽유병으로 떠도는‘ 이호바다의 물결에 홀린 것 같았다.

 

문학 판의 정적을 깨트린 것은 관악의 금빛 선율이었다. 2010년 제주도내 색소폰동호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단체 ‘제주에코색소폰앙상블’. 김상우(남녕고 교사)의 지휘로 와인색의 유니폼을 입은 23명의 단원들이 펼친 공연은 문학동아리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첫 곡으로 연주한 이들은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 ‘내 사랑 어디에’ 그리고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난생처음’ 등의 그 시절 그 노래를 선보였다. 앵콜곡으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연주할 때는 모두가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 불렀다. 제주에코색소폰앙상블’은 해마다 몸이 불편하여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 한국서단에 ‘파도체’를 탄생시킨 한곬 현병찬 선생이 현장 휘호하고 있다.

이번 난장에는 모처럼 묵향도 피어났다. 오전에는 동아리축제에 참석했던 수필가 강선종 님이 ‘문학은 세상을 밝히는 전조등’이란 현장 휘호를 했고, 오후에는 한곬 현병찬 선생을 초대했다. 그는 제주의 파도와 제주인의 심성, 그리고 바람의 말 같은 제주 말씨를 하나로 엮어 한국서단에 ‘파도체’를 탄생시킨 한국의 대표적인 한글서예가이다. 문화패 바람난장 가족들에게 ‘바람으로 예술로 놀다’란 휘호를 유장하게 써 내려갔다. 열 개 부스 문학동아리 별로 일일이 덕담을 담은 현장휘호를 선물했는데, 한 획 한 획이 날렵하고 강직하면서도 부드럽고 생동감 넘치는 생명의 섬 제주의 파도가 출렁이는 듯하였다.

 

문화패 바람난장을 함께 하는 강중훈 시인(전 제주문인협회 회장)은 “문학동인 간의 연대, 그리고 서로 다른 예술인 간의 소통은 제주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 서른다섯 번째 바람난장이 신상공원에서 열린 문학동아리 축제와 함께했다. 사진은 강선종 수필가의 현장 휘호 모습.

문학동아리 축제를 기획한 김가영 제주문인협회 회장은 “도민들에게 가을맞이 선물로 이 행사를 준비했다” 면서 “이 동아리 축제가 제주문인들의 창작의욕을 높이고 제주문학의 품과 격을 격상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오승철

 

그림=김해곤

 

음악=제주에코색소폰앙상블

 

사진=허영숙, 고해자

 

서예=한곬 현병찬, 강선종

 

시 낭송=이금미, 김정희

 

음악감독=이상철

 

 

※ 다음 바람난장은 9월 2일 저녁 7시 서귀포시 솔동산로 6-1 고영우갤러리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