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 제주신보
  • 승인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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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임숙/수필가

배경 음악 없이 조용한 골목길이 클로즈업 된다. 백발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느리게 움직이고, 집안에는 칠십 세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며 식사를 권한다.


“식사하는 것도 촬영하나요?”


노인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식탁으로 옮기며 어색한 듯 말을 건넨다. 93세 마사코(한국이름 남덕)여사의 얼굴은 참 곱다. 노인은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마사코 여사의 얼굴이 화면 가득 채워지는 순간, “참 곱게도 늙으셨네.” 어두운 관중석에서 누군가 혼잣말을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고은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초겨울 고향집 마당에 핀 국화꽃처럼 은은한 여운을 준다. 사랑은 영혼을 순결하게 한다. 육십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동일한 그리움으로 그녀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사랑은 거룩하다. 


“1940년 동경에 있는 미술대학에서 만났어요.”


마사코 여사는 남편과(이중섭) 둘이서 다정히 찍은 20대 초반의 사진을 들어 보인다. 또렷한 기억력과 떨리는 듯한 음성으로 사진 속에 남편을 본다. 한참 그 사진을 들어다 보이며 남편과의 숙명적인 만남을 기억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남편이 보내온 애절한 편지 묽음을 펼쳐 보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소중한 나의사랑 남덕’, 이중섭화가의 사랑 고백은 그 편지 속에 육십년이 지난 시간에도 마사코 여사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뜨겁게 사랑하오.”


어린아이 같은 천지 난만한 그의 편지는 무심한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변했다.


“길고 긴 뽀뽀(키스)를 받아주오.”


두 개의 긴 얼굴을 드로잉으로 엽서에 그려, 마사코에게 보낸 뽀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사랑의 징표이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귀포시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합작 촬영했다. 감독은 일본인 사카이 아츠코 이다. 영화는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으로,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 화가와 부인 마사코 여사의 현해탄을 뛰어 넘은 순결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원산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일본 유학에서 마사코 여사를 만나 결혼하고 고향에 돌아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던 중에 한국전쟁이 난 것이다. 짧은 결혼생활은 천재화가의 운명을 시샘이라도 하듯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격동의 시대에 사랑인들 온전할 수 있었을까.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랑은 시대가 용납하지 않았다. 마사코와 그의 두 아들은 일본인으로 돌아갔고, 이중섭은 한국에 남았다.
마사코 여사는 남편과의 행복한 시간을 추억하며 눈시울을 훔친다.


“공산당이 지배하며, 지주들이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들은 가난한 섬 제주도로 피난 왔다. 그 당시 제주는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척박한 곳이다. 그러나 따뜻한 인정과 원시적인 자연환경은 이중섭 화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서귀포에서 1년 피난 생활은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회고한다.


“궁핍한 피난 생활에 먹을거리가 없어 배가 고프면 한라산에 가서 부추를 뜯어다 먹고, 서귀포 앞바다에 가서 게를 잡아다 양식으로 삼았지만, 서귀포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지요.”


회한의 미소를 띠며 마사코는 말을 이어간다.


“화선지가 없어 담배 은박지, 버려진 널판에 그림을 그렸지요.”


가난했던 시대, 그 천재화가는 버려진 널판에 ‘서귀포의 환상’을 그려 놓았다. 그가 꿈꾸던 무릉도원은 존재할까. 궁핍하고 척박했던 섬사람들의 순박한 삶이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곳, 그는 서귀포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과 예술의 결정체를 이루어 낸 이중섭 화가의 39세의 생애는 짧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사랑이다. 그의 사랑은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마사코의 아직도 끝나지 않는 사랑에 존경을 표했다.


백발이 된 마사코는 서귀포시 초청으로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다. 피난길에 살던 초가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육십 년 전 기거했던 좁은 방에서 가족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주인 없는 집과 정원, 마사코는 이중섭거리에 걸려 있는 판화 “길 떠난 가족”을 말없이 지켜보며 그가 기거했던 집에서 휠체어를 서서히 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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