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탄생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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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제주펜클럽 회장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학을 통한 제주의 세계화’라는 타이틀로 제주펜 회원들과 연변시인협회와의 문학교류 행사를 다녀왔다.

그동안 제주가 섬이라는 자연환경을 고려해 모리셔스와 일본, 중국의 섬 문학인들과 문학 교류를 통해 제주를 알리는 사업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연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섬과 대륙에서 부는 문학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찾아간 연변은 한글 간판에서 보여주듯이 조선족이 많은 곳이었다.

같은 말과 글을 쓰고, 정서를 가지고 있는 연변시인들에게 시와 대화로 제주를 알리는 자리는 매우 뜻깊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곳이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살길을 찾아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옮겨간 우리 동포들이 사는 곳이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영혼이 깃든 백두산을 오를 수 있는 곳이며, 아픔이 흘러가는 두만강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강 건너 아름답지만 침묵의 북한 땅을 보면서 느끼는 아픔은 너무도 컸다.

일송정, 해란강 등을 바라보며 독립을 위해 회의를 하던 곳 선구자의 무대였던 비암산이 있는 연변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또한 우리 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올해가 민족의 시인이라는 윤동주가 1917년 12월 30일 출생한 지 100년째 되는 날이다. 또한 용정시에서 가까운 명동촌에서 출생해 일본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상범으로 복역하다 옥사한 지 72년이 되는 해이다. 명동소학교를 거쳐 용정중학교, 숭실중학교,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의 릿교대학(立敎大學), 후쿠오카의 도지사대학(同志社大學)을 다니다 사촌인 문인 송몽규와 함께 눈을 감고 만 비운의 시인이 윤동주다.

윤동주의 생가터와 복원된 생가, 시비, 우물, 교회당에서 윤동주를 만났다. 생가의 제단에 참배하고 한 회원이 낭송한 ‘서시’를 듣는 순간 제단 위에 놓인 사진 속의 윤동주가 우리에게 시를 들려주는 듯했다. 윤동주의 무덤과 기념관 등을 둘러보며 그를 영접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영원히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절대 순결과 참회, 속죄양의 표상’이라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그가 고뇌하고 추구했던 삶을 공감하게 되고 가슴이 숙연해진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에는 윤동주의 삶의 지표와 시 정신이 응축돼 있다. 그가 살았던 용정과 서울과 도쿄, 교토, 후쿠오카에 문학비와 기념관 등이 있는 걸 보면 그가 남긴 시는 한국문학사에 큰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읽는 이의 영혼을 구원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가 남긴 시 「참회록」이나 「십자가」, 「사랑스런 추억을 읽으면」 등에서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겠다는 신념과 신앙을 읽을 수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만큼 그는 절대적인 순결을 노래하고 있다. 일본 유학 중에 쓴 「쉽게 씌어진 시」는 삶에 대한 반성과 고독을 토로하고 시대의 어둠에 대해 표현한 작품이며, 치열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중학생 때 썼다는 동시 「병아리」·「빗자루」·「오줌싸개 지도」·「무얼 먹구 사나」 등은 평화롭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주로 읊었는데,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심(童心)을 노래한 시를 쓰며 윤동주는 시심을 키웠을 것이다.

연변시인들을 만나 그들의 시를 이해하고 정을 나누며 제주를 알리는 시간을 가진 것도 소중했지만 윤동주를 새롭게 만났던 ‘문학을 통한 제주의 세계화’ 행사는 참가한 회원들의 가슴 속에서 문학의 혼을 불태울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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