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옆에 있어도 허전할 때 손자 손녀가 짜릿한 감동을 주었다.


그저 그런 다세대 주택이지만 이십여 년 자란 동백 울타리가 이제는 숲이 되어 참새와 동박새 그리고  산까치와 이름 모를 새들이 찾아든다.  


베란다로 넘어온 짙푸른 굴거리 나무에 참새들이 모여 앉으면 처진 눈이 동그래진다.


“해치지 않을게 가지 마”


간청을 해도 망설임 없이 날아가 버린다. 나는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해 전전긍긍하며 진을 빼는데 놈들은 결단이 빠르다.


남편 칠순에 찍은, TV만큼 큰 가족사진을 일과처럼 바라본다. 십수 년이 지났으니 옛 사진이다. 사진 속에 귀여운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커서 둥지를 떠난 새처럼 높고 넓은 곳을 찾아 날고 있다.


작은 베란다 난간에 참새가 앉았다. 반가워서 맨발로 나가 조심조심 좁쌀을 뿌렸지만 선심을 모르고 날아가 버렸다. 멍석을 깔고 기다리니, 수시로 날던 까치도 산 비둘기도 사라지고 굴거리 나무에 늘 내려앉던 이름 모를 잿빛 새도 보이지 않았다. 좁쌀은 바람에 날아가고 비에 젖어 자꾸 흘러내렸지만 젊은 날 자식들 밥상을 차리듯이 좁쌀을 계속 뿌렸다. 며칠 후 참새 한 마리가 갸우뚱거리며 좁쌀을 먹더니 어느새 무슨 신호를 했던지 작은 베란다에 참새 떼가 가득 내려앉았다.


초등학교 때 교문 앞에 가끔 노란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오면 떠날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구경을 했다. 용기를 내 병아리 한 마리를 가슴에 안았을 때, 아찔했던 흥분이 되살아났다. 손자 손녀가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삼십여 마리 참새들을 <서귀포 대식구들>이라고 동영상을 보냈다. 식구가 많아 좁쌀값이 많이 들어간다고 했더니 취직한 외손녀가 좁쌀값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마치 할머니에게 효도하겠다는 말처럼 들려 눈물이 번졌다. 참새들의 재롱으로 태평양 건너 있는 손자 손녀들과 주거니 받거니 왁자지껄 바빠졌다.


눈발 날리듯이 내려와 짹 짹 거리며 좁쌀을 쪼고 대접에 채워 놓은 물도 꼭 한 모금씩 마신다. 난간이나 맷돌 위에서 통통한 배를 뽐내다가 한 마리가 날면 일순간 포르륵 봄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머리가 나쁘다는 뜻으로 새 대가리라 하는데 참새들은 좁쌀을 기억하고 찾아왔다. 대가족이 찾아오니 마치 무슨 큰일을 해낸 것 같이 신바람이 났다. 참새 보는 재미에 하루가 더 짧아졌다. 춤추듯이 살랑대는 참새 대가족을 바라보노라면 덩달아 무거운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뿐해졌다.


새 떼에 얼이 빠진 탓인지 배설물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영역의 표시인가 베란다가 온통 배설물로 덮여있었다. 난간 위는 아래층에 물을 흘릴 수 없어 말라붙은 배설물을 불려서 걸레로 닦아냈다. 아기들 기저귀 갈 듯이.


“참새 보세요.”


소리치면


“많이 왔네.”


좋아하던 남편이 맨손으로 청소하지 말고 장갑이라도 끼라고, 조류독감을 모르냐고 핀잔을 주었다.

 

조류독감이 배설물로 전염된다는 걸 알지만 참새들과 상관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일찍 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데 우리 집 참새들은 뿌려주는 좁쌀을 기다리며 무능해지고 게을러지지 않을까.


그래도 베란다를 맴돌다 돌아가는 새들을 보니 마치 아이들과 통로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손자 손녀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좋다는데 멀어서 오지 못하니 더 간절한가 보다.


늙은 참새는 못 보았다. 차라리 새가 되고 싶다.


무소유로 하늘을 날면 저리 늙지도 않고 아름다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움도 비우라는 내면의 속삭임을 듣는다.


손자 손녀가 품에 안기듯이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가슴으로 영혼으로 깊이 파고든다. 야자수위에 까치가 먼바다를 바라본다. 이만하면 족한 것 같다.


2017,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