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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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이 몸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시경’‘서경’을 어디에 쓰겠는가(馬上得天下, 安事詩書).” 중국 한나라 창업자인 유방이 최측근인 육고(陸賈)에게 한 말이다. 유방이 누구인가. 흙수저로 태어나 백수건달이나 다름없었으나, 온갖 산전수전을 맨몸으로 헤쳐나가면서 마침내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의 영웅호걸인 항우마저 꺾고 중국 천하를 얻은 시대의 영웅이 아닌가. 이런 자신에게 백면서생인 육고는 틈만 나면 ‘시경’, ‘서경’ 등 성현의 고전을 인용하며 고언을 하자, 작심하고 되치기를 했다. 하지만 육고는 물러서지 않고 버티었다. “마상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어찌 마상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라고 되받아쳤다. 그러면서 지난 정권인 진시황을 예로 들었다.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후 그의 가업이 자손만대에 전해질 것이라 믿고 시호를 1세, 2세, 3세로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3대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10여 년 만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과거의 성공 신화에 집착하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진 사례는 많다. 툭하면 과거의 알량한 성공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자화자찬하는 이들 주위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봤는가. 듣고 싶은 신청곡은 ‘지금은~’인데, 흘러간 ‘왕년에~’만을 틀고 있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젊은 시절에 명성을 쌓고도 나이 들어 제 손으로 그것을 허무는 사람도 어디 한둘인가. 모두가 말 위에서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초우량 기업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게 다반사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매출액 기준으로 100대 기업에 속했던 국내 기업 가운데 10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은 12개였다. 매년 5만 개가 넘는 신설 국내 법인 가운데, 10년 이상 버티는 곳은 16%, 20년 이상은 4%에 불과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정권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마상(馬上)은 기업 CEO(최고경영자)와 서울시장 때의 성공 신화였다. 여기에 매몰돼 국정을 운영하다 여러 가지 화(禍)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마상은 ‘전직 대통령 영애’, ‘선거의 여왕’이었다. 말 위는 편했고, 말 밑은 두려웠다. 결국은 파탄과 몰락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마상은 ‘촛불민심’이다. 견고한 핵심 지지층은 푹신한 안장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지난 정부의 실정과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기대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사는 무상(無常)이다. 김정은은 핵을 갖고 난동 부리고 있다. 높은 지지율에도 변화 조짐이 있다. 밑에 사정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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