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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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편집부국장대우
벌초(伐草)는 한자 그대로 ‘풀(草)을 친다(伐)’라는 의미이다. ‘무덤(墳)을 깨끗이 정리한다(掃)’라는 뜻에서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벌초는 전국 공통의 미풍양속이다. 고향 근처에 사는 후손들이나 외지에 나간 후손들이 찾아와서 조상의 산소에 자란 풀과 잡목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성껏 정리한다.

경기도에서는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 친다’라고 하며 추석 전에 벌초를 끝내야 한다.

▲제주도의 벌초는 더욱 독특하다.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도내 곳곳에서 며칠에 걸쳐 대규모 행렬이 벌초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제주의 산소는 명당을 찾아 산과 오름, 중산간 임야 등지에 흩어져 있어 벌초하는 날만 3~4일 걸리기도 한다.

벌초는 크게 두 차례로 나눠 행해진다. 보통 8촌까지 모여 고조부 묘까지 벌초하는 ‘가지벌초(가족벌초)’가 있다. 또 가문 전체가 모여 기제사를 마친 선대 묘 수십 기를 돌보는 ‘모둠벌초(문중벌초·웃대벌초)’가 있다.

모둠벌초와 가지벌초 순서는 집안마다 다르다.

모둠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에 행해졌지만 직장인과 출향 인사들의 참여를 위해 초하루를 전후한 토·일요일 중에서 택일하기도 한다.

▲제주 전역은 벌써부터 조상묘 단장에 구슬땀이다.

본지 11일 자 4면 사진 뉴스에 담긴 가족들의 벌초 장면은 벌초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실감케 한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안부 인사 중 하나도 ‘벌초해수과(벌초했습니까)?’이다.

속담에서도 제주의 벌초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추석 전이 소분 안허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추석 전에 소분을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 ‘식게(제사) 안 한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

▲이제 온 섬을 출렁이게 하는 벌초 행렬은 이번 주와 다음 주 주말을 전후해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과 전국으로 흩어졌던 부모형제·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때이다. 심지어 일본 등 해외로 떠났던 출향 인사들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벌초를 같이할 일손이 부족하고 생업에 바빠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기도 하고, 후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조상 묘를 화장해 납골묘에 모시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조상 없는 자손이 없는 것처럼 조상의 은덕을 기리면서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날만큼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 ‘하나’가 되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을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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