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전 호주 대사(62)는 35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외교통상부 혁신인사 기획관, 재외동포영사국 국장, 다자외교조정관(차관보급),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외교안보 전문가다.


한국과 호주의 FTA 체결, 한국의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김 전 대사는 외교 현장을 누비며 실무책임자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가족 및 성장 과정


김 전 대사 부친의 고향은 구좌읍 상도리다.


그는 체신공무원인 아버지가 제주시로 전근을 오면서 ‘무근성’에서 나고 자랐다.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북초등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 2학기 때 아버지가 다시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되는 바람에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된다.


용산중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가 다시 제주로 내려오는 바람에 그는 혼자 하숙을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방학 때마다 제주에 내려올 때는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로 가서 8~10시간 씩 배를 타야만 했지만 한라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고향에 왔구나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 가족으로는 부인 김정순씨(62)와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큰딸과 예일대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작은딸 등 2녀가 있다.

 

 

▲외무고시 도전과 다양한 전공 선택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한 김 전 대사는 “당시 유신 때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다가 3학년 돼서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외무고시를 목표로 정했다”고 말했다.


“전공이 언어학이니 특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선배들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4학년 때 급성 간염을 앓아 고향 제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그는 어느 정도 병세가 회복되자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 입학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때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서울대 법대대학원 논문을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외교관 생활을 하다 보니 국제정치학을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전공을 정치학으로 바꾼 배경을 소개했다.


나이가 들어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유도 재밌다.


“외교관으로 국가 이익을 위해 일을 하다 보니 협상이 제일 중요했다”며 “그래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국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 김봉현 대사(오른쪽)는 2014년 호주인 위안부 피해자인 오헤른(92)씨를 프란치스코 교황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면담에 초청하기 위해 자택을 직접 방문했다.

▲외교관 생활 35년의 회고


그는 맨 처음 일본에서 3년 동안 외교관 생활을 했는데 그 때 일본에 대해 많을 걸 배우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 대해서 잘못 아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야 일본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일본에 이어 옛 소련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1년 남짓 만에 소련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는 “당시 15개 공화국을 거느린 막강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도 소련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련이 무너진 것은 국민이 자유민주주의를 습득하고 체제의 불합리를 인식했기 때문”이라며 “북한도 주민들이 잘못된 체제를 인식하면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 후 그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면서 북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안보리를 통해 압박과 제재를 이끌어 냈다.


한국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때도 그는 현장에서 실무를 총괄했다.


“UN차석대사로 재직할 때였는데 비상임 이사국 진출에 성공을 해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당시의 감동을 떠올렸다.


외무부 다자외교조정관 때인 2012년에는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는데 그는 한국의 교섭대표를 맡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주최한 단일 국제기구 행사로는 가장 큰 대회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58개국의 대통령 및 총리 등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호주 대사로 재직 때인 2014년에는 한국과 호주 간 FTA가 체결됐다.


“10년 동안 논의를 해오던 FTA가 원만히 성사돼 외교관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특별한 인연


김 전 대사는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처음 국제연합과에 배치를 받았는데 당시 과장이 반기문 총장이었다고 한다.


“반 총장은 그 때부터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밝힌 그는 “판단이 정확하고 빨랐고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금방 해법을 찾아내 제시했으며 겸손했다”고 반 총장을 높게 평가했다.


2001년 한승수 외교부장관이 UN총회 의장으로 당선되자 당시 차관이었던 반 총장을 의장 비서실장으로, 그리고 김 전 대사를 의장 보좌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반 총장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반 총장이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는 김 전 대사가 장관 보조관으로 발탁됐다.


반 총장이 UN사무총장으로 선정됐을 때는 김 전 대사가 유엔 차석대사로 발령을 받게 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을 위해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김 전 대사는 차관보로 승진해서도 UN 관련 사항의 실무를 계속 총괄하면서 반 총장이 방한할 때마다 만남은 계속됐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지난해 7월 말로 정년퇴직을 하게 되자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반 총장을 도와주게 됐던 것이다.

 

   
▲ 2015년 애들레이드 남호주대학교에서 열린 제9회 대양주한국학회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봉현 대사(가운데)의 모습.

▲제주대 초빙교수를 맡게 된 배경


국립외교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수도권 여러 대학에서 강의 요청을 받았지만 고사하고  제주대 초빙교수에만 응했다.


그는 “제주는 고향이고, 내가 지금껏 쌓은 경험과 지식, 지혜를 고향 후배들과 공유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제주에서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게 아주 보람 있다”는 그는 “제주대에서 ‘북한’과 ‘통일론’을 강의하고 있지만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고향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지향점, 가치관 등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그래서 제주대 학생들은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도록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주 미래 발전 방향과 외교 역량 강화


그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교적 역량 강화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섬이긴 하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일본 등 외국과 교류 기회가 더 많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특히 “제주를 생각하면 싱가포르가 떠오른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제조업이 아니라 고도화된 전문지식이 필요한 서비스 산업에 집중한다”며  “제주도 역시 청정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호주도 청정 자연을 유지하는 데 가장 역점을 두다보니 80%가 서비스 산업이며, 호주의 청정 자연에서 생산되는 농수축산물 또한 신뢰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그는 “제주도가 정책을 잘 수립해서 청정 자연을 유지하고, 교육, 청정에너지, 의료, 관광 등을 서로 연계·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교섭 역량을 강화하고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며 “많은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고 외국과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도 유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제주도라면 뭐든지 믿을 수 있도록 친절하고 신뢰도가 있어야 한다”며 도민들의 자발적 의식 변화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