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결핍으로 지어진 섬에서 시·그림·영화가 태어났다
고립과 결핍으로 지어진 섬에서 시·그림·영화가 태어났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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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우도 고래콧구멍동굴 난장
▲ 강부언 作 고래콧구멍의 공명.

휘어진 무지개, 바닷물 마시느라 긴 꼬리 드리우고

거친 대봉새, 학을 희롱하며 날개 짓 퍼덕이네.

 

영롱한 샛별 밝게 빛나건만, 진세는 아직도 깜깜 밤중

흑룡의 부릅뜬 두 눈, 푸른 기운 뻗쳤네.

 

용이 끄는 수레 타고, 잉어 밟고 놂이 하도나 아름답고

머리 아홉 달린 천오 귀신 어슬렁대며 가는구나.

 

물 속 깊고 으늑한 궁전에 온갖 바다 영령들 가둬놓아

고약한 물고기들, 딱딱한 조개들이 독한 비린내 풍겨내네.

 

태음의 기운 서린 굴에 현묘한 이치 머물고

구지산 우임금의 무덤에선 신의 자취 전하는데

애석하게도 절경이라 도경엔 빠졌구나.

 

조각배 노 저어 들어가니 심신이 주뼛하고

날라리 요란히 불어대니 늙은 용이 듣는구나.

 

물은 오열하고 그름 짙어가며 사람들 근심 속에 빠뜨리니.

황홀하다. 돌아옴이어! 아직도 꿈속인 듯 몽롱하기만 하네.

 

아, 난 다만 문이 막혀 있어 나갈 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어찌하면 열 자처럼 맑은 바람 타고 맘껏 날아볼까.

 

- 충암 김정의 「우도가」 중에서

 

▲ 나종원 연주자가 소프라노색소폰으로 영화 ‘미션’의 주제곡인 ‘가브리엘 오보에’를 연주하고 있다.

바람은 살살 불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하늘은 푸른빛, 흰 구름 몇 송이 치자꽃으로 떠다녔다. 썰물 때를 기다려 검멀레(검은 모래) 해변을 지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우리는 고래콧구멍동굴로 스며들었다. 동굴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문득 높다란 천정에서 벽을 타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스르릉~ 울리며 흘러내렸다. 영롱하면서도 묵직한 그 음향은 지상의 악보에는 없는 곡조. 단번에,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왔구나.’ 하는 자각이 왔다. 우리는 조용히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서 떠드는 자, 법에 걸린다!

 

조명은 필요 없었다. 콧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으로도 충분했다. 나종원의 소프라노색소폰은 「가브리엘 오보에」를 연주했다. 이 곡은 영화 『미션』의 주제곡. 브라질의 오지 이구아수폭포 근처에서 과라니족이 화살을 겨누며 가브리엘 신부에게 접근하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보에를 꺼내어 불었던 곡이다. 피부색도 문화도 다르지만 음악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곡. 이어서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A time for us)」, 와우~ 오늘은 음악이 짱이다!

 

수만 년의 공정으로 파도가 파놓은 이 해식동굴(海蝕洞窟) 바닥에 여기저기 깔려있는 바위에는 붉은 이끼가 덮여있는데 조금도 미끄럽지가 않다. 습기도 별로 없다. 이 또한 고래콧구멍동굴이 가진 미덕이다.

 

▲ 시 낭송가 김순덕씨가 오창래 시인의 ‘우도에 가면’을 낭송하고 있다.

시 낭송 첫 순서는 충암 김정(金淨)의 「우도가」. 김정은 1520년(중종 15) 제주에 유배와 결국 사약을 받고 38살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제주풍토록』과 자연찬가인 「우도가」를 남겼다. 이어서 우도출신 시인 오창래의 「우도에 가면」, 김철수의 「그 섬」, 그리고 오승철의 「고래콧구멍」을 시 낭송가 손희정, 김정희, 김순덕이 감칠맛 있게 낭송한다. 시가 웬만해도 낭송이 좋으면 명시가 탄생한다.

 

우도는 소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소섬’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방목하는 섬으로 사람은 살지 않았다. 김석린 진사가 우도 개척을 조정으로부터 허가받은 것이 1822년(헌종 8)이었다. 그는 제주목사를 지낸 조정철의 손녀사위였다. 김 진사는 주민들을 모으고 물자를 준비하는 등 2년의 준비를 거쳐 1824년 입도하여 섬을 개척했다. 그는 책만 읽는 선비가 아니라 직접 민생으로 파고드는 지성인이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1902년(고종 39), 김석린 진사의 우도 사랑을 기리는 <진사김공석린유애비(進士金公錫麟遺愛碑)>가 세워졌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오리지날 비석은 비각(碑閣) 밖으로 내쳐있고 새 비석이 비각 속에 떠억 들어가 있다. 원비(原碑)가 오래돼 마모가 심해졌다면 그걸 더욱 보호할 방도를 찾아야 할 터인데 이건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주객전도(主客顚倒), 한시바삐 바로잡히길 바라본다.

 

우리가 우도라는 섬에 가고 싶어 하는 건 왜일까? 섬에는 고립, 결핍, 이런 것들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섬에서 고립과 결핍의 광맥을 잡아채어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든다. 그러고 보니 섬은 어떤 사람에게는 한 재산 마련하는 밑천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려들다 보니 고립과 고독은 바닥이 났고 소란, 분주가 설치고 있다. 이생진 시인은 성산포에서 우도를 바라보면서 “저 섬에서 한 달만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렇게 복작거리는 지금도 그 소원이 유효한지 그것이 참 궁금하다.

 

▲ 서른일곱 번째 바람난장이 ‘우도 고래콧구멍동굴’에서 펼쳐졌다. 사진은 바람난장 가족들의 모습.

한정우 우도면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도 바쁘고 내일도 바쁘다. 우도를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지 밤낮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단다. “주민들과 의논하면서 우도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섬, 아름다운 섬으로 가꿀 각오입니다.” 주민이 왕인 시대가 도래하긴 했으나 의견을 맞추기가 너무나 어려운 게 문제다. 우도사람들에게는 “제주도에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젤 먼저 보는 것은 우리 우도사람들이다.” 라는 기백이 있다. 그렇다, 그 기백으로 무엇을 못하랴!

 

 

글=김순이

그림=강부언

사진=허영숙

연주=나종원

시 낭송=김정희·손희정·김순덕

 

 

※ 39회 바람난장은 삼양 원당봉에서 9월16일 오전 11시에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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