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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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비거니즘(veganism)은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육류·생선은 물론 우유와 동물의 알, 꿀 같은 동물로부터 얻은 식품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 사람. 식물성 식품만 먹는 채식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비건(vegan)’은 음식뿐 아니라 동물의 것으로 된 옷이며 액세서리까지도 거부한다. 독일에서 유행한다는데, 베를린에는 채식주의 식단이 영업 중이고 어느 거리엔 그들을 위한 식품·책·옷 등의 매장이 몰려 있다고 한다.

2016년 맨 부커상 수상작인 한 강의 『채식주의자』에 주목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제외한 모든 음식을 버립니다. 그리고 채식을 고집하게 돼요. 그런 아내를 보고 남편이 묻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아내는 말합니다. 꿈을 꿨다고….’

작품은 이렇게 도입되고, 실제 채식주의자가 등장한다. 문제는 그 채식주의자가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이유는 진즉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정 이유가 있다면, ‘그건 꿈인데….’다. 편식 체질인데 도대체 불편하다. 허구 속을 방황하다 한계를 실감해 섣불리 책을 덮어 버렸다.

‘내용과 주제에 공감하지 못했다. 무엇이 좋은지 잘 몰랐다. 철학적 메시지를 읽어 내질 못했다.’ 적잖은 독자들이 그랬듯 나도 잠꼬대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국 최고 권위라는 맨 부커상(Man Booker Prize).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문학상과 더불어 3대 문학상 중의 하나다. 그런 상의 영예가 무색해 머쓱했다. 자격지심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 탓이려니.

식성 탓도 한몫 했을 법하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육식주의자니까. 그것도 고기가 없으면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육식주의자. 고기라는 범주엔 소·돼지·닭 같은 뭍에서 나는 것과 어패류 같은 해산물을 광범위하게 망라한다.

어릴 적 우심한 가난에 육류를 먹지 못하며 큰 한(恨)이라도 풀려는 듯, 고기를 그렇게 즐긴다.

하지만 이런 식성은 비단 나 같은 특정인에 국한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육류를 선호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기류가 단백질의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해 지구상에서 도축되는 닭이 무려 500억 마리를 넘는다.

우리나라도 연간 7억 3000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 한 사람이 일 년에 15마리 가까운 닭을 먹고 있다는 셈이 나온다. 복(伏)이 시작되는 7월은 닭에게 잔인한 달이다. 닭의 성수기라 소·돼지는 덜 도축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닭이 죽어야 소·돼지가 산다.’

개의 경우도 만만치 않다. 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령상 도축 행위가 불법이라 공식적인 통계는 잡히지 않으나 개고기를 먹어 본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55.3%에 이른다고 한다. 죽어 가는 개의 마릿수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그것들이 그냥 죽어 가는가. 아니다. 도살(屠殺)된다. 무게를 늘리려고 소에게 물을 먹이기도 한다. 학대 속에 죽어 가는 것이다. 갓 건져 올린 낙지를 난도질하는 손을 보라. 무지막지한 게 사람이다.

그것들이 마지막에 오르는 곳이 밥상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야채의 맛과 칼로리 이전에 윤리에 관한 양심을 선언하는가. 나는 여기에 심한 갈등을 느낀다. 한창 싱싱하게 자라는 푸성귀를 캐어다 칼로 썰거나 펄펄 끓는 물에 데쳐 먹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을 도살하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식물도 고통 앞에 꿈틀거린다. 또 비명을 내어지른다. 사람에게 그 소리를 듣는 귀가 없을 뿐이다.

내 밥상엔 늘 고기와 야채가 함께 어울린다. 사람처럼 잔혹한 동물은 없다. 지상 최고의 포식자, 인간! 한데 방법이 없잖은가. 금강산도 식후경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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