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들의 피땀으로 1960년대 일주도로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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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근 전 道 건설교통국장, 제주 건설사 발간
▲ 일주도로(181㎞)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는 김중근씨(왼쪽).

 

제주~서귀포간 직통도로(횡단도로) 개설은 도민들의 소망이었다.

일제는 1932년 임도를 설치한 이래 2년 만인 1934년 완공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서귀포 횡단도로(5·16도로)는 1932년 13㎞만 개설됐고, 이후 17㎞를 연장해 속칭 배고픈 다리 36곳이 연결됐다.

이어 읍·면이 시행한 접속공사로 제주읍 6㎞와 서귀면 8㎞를 더해 총 44㎞의 도로는 3년 만인 1935년에야 완공됐다.

이 같은 사실은 김중근 전 제주도 건설교통국장(76)이 제주지역 도로와 교량 건축사업을 집대성한 ‘제주 건설사’를 발간하면서 밝혀졌다.

그는 1962년 일주도로 포장계획이 수립됐으나 6억3160만원을 조달하지 못해 범도민운동은 물론 재일교포까지 가세해 전체 공사비의 58%인 3억7000만원을 정부의 도움 없이 자체 부담하면서 대역사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1962~1969년까지 8년간 진행된 일주도로 공사는 181㎞ 중 30%인 60㎞만 포장됐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순시 당시 권용식 도지사의 업무보고에서 1개월 사이 공사비가 7000만원이 증액된 것에 의문을 제기해 도정이 발칵 뒤집어졌고 그는 책자에서 소개했다.


예산부족으로 지지부진했던 일주도로 미포장 구간은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에서 도지사로 부임한 권용식 지사의 끈질긴 노력과 그의 부인 한신동씨가 육영수 여사에게 건의하면서 박 대통령이 특별교부세 2억원을 전격 지원해 활기를 띄게됐다.

이 과정에서 도민들이 자원해 전체 노동력 중 25%를 보탰고, 골재를 기부하면서 제주를 한 바퀴 연결하는 일주도로가 포장될 수 있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5·16도로를 통해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던 중 아들 지만군(당시 6세)이 성판악에서 소변을 보는 동안 도로포장 상태가 거친 이유를 지적한 일화도 소개됐다.

당시 도로포장은 아스콘공법이 도입되지 않아 작은 골재를 먼저 깔고 아스팔트원유를 뿌려 마감하면서 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필자는 회고했다.

그는 또 제주도지의 도로 개황 부분에 1861년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6개 노선이 도로가 표시됐다고 기록했으나 대동여지도 상의 도로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표시를 위해 직선으로 그려 놓은 것으로 사실상 도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도로와 교량을 설계·감독·공사하면서도 현재 이용되고 있는 도로와 교량이 어떻게 형성됐고, 언제 개설됐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을 가지고 도서관을 출입하며 옛 문헌과 신문자료를 확인한 끝에 ‘제주 건설사’를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1941년 한림읍 대림리 출신인 저자 김중근씨는 1960년 한림공고를 졸업하고, 그 해 제주시 건설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남제주군과 북제주군 건설과장, 제주시 도시과장, 제주도 건설과장·건설교통국장을 역임하고 2000년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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