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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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농사일은 농부에게 물어야 한다지만, 올림머리 외에는 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박씨도, 학살이 주특기인 전씨조차도 최고의 직을 잘 수행한 것으로 보아, 누군들 어떤 자리라도 시켜놓으면 못할까마는, 논문 한 편 쓰기도 힘들어 몇 년씩이나 구르는 주제에, 꼴에 학자랍시고 남의 것을 표절하는 것도 모자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제자 논문을 강탈하고도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면, 그 학교 꼴이 온전할까? 박씨가 망쳐놓은 나라꼴과 다를 바가 뭐 있겠는가?

논문은 남에게 쓰게 하고, 심사위원들에게는 술집을 다니면서 어르고 달래 도장을 찍게 해 학위를 받는 남다른 재주를 바탕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면, 또는 어느 행정부서에 근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너 교수 한번 해 보거라”해서 교수가 됐는데, 나중에 운 좋게 최고의 지위까지 올라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기용하는 그래서 그에게 부역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공부나 연구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나, 그래도 교수라는 이름은 지켜야겠고, 이리저리 곡학아세(曲學阿世)해 자리를 얻어, 자리가 학문 수준인 양 으스대고, 시간만 나면 끼리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호형호제하면서 우의를 과시하며, 영혼도 없이 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돈 몇 푼 쥐여 주면 “주여, 어떻게 당신의 업적을 기리리까?”하고, 사이비 교주라도 모시듯 온갖 곳에 그분의 정신을 기린다는 문구를 붙어두고 추앙하며, 그래서 받아온 돈은 온갖 명분을 붙여 끼리끼리 나누고, 그래도 남으면 회식비라는 이름으로 흥청망청 술값으로 지불하는 그런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는 학교가 있을까? 있다면 그 학교의 미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그런 것들뿐이라면, 미래를 어찌 기대할 수 있으리오.

뽑을 때는 주인이지만, 뽑고 나면 구경꾼인가? 아무런 힘도 없어 그저 망치는 꼴을 쳐다만 보아야 하는가? 촛불이라도 들어야 바뀌는가?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고 나면 학교는 망해갈 것이다.

여태껏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부역하던 자들의 자녀들이, 해방이 되어 독립투사의 자녀로 둔갑하여 행세하기도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살고, 밝혀진다 하더라도 세월만 흐르면 잊혀져 대충 잘 먹고 잘 살아왔다.

반면 실제 독립투사의 자식은 조상이 전 재산을 바쳐 독립자금을 댄 까닭에 한 푼도 남겨두지 못했으니, 생활은 궁핍하고, 교육다운 교육은 받지 못해 이리저리 낭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지만,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니 관심도 없고, 그래서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져,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니면 말고는 없다. 과거를 묻어두고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다. 잘못한 자가 있으면 끝까지 추적하여 그의 자식까지도 죄를 묻고, 잘 한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발굴하여 그의 자손 대대로 그 업적을 기려서 조상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을 때, 적폐는 하나씩 청산될 수 있다.

청산은 파괴이다. 후임자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파괴할 수 없다. 파괴는 스스로 당당하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파괴하는 사람은 언제나 옳다.

뽑을 때는 주인이지만, 뽑고 나면 구경꾼이라지만, 구경꾼은 불타는 것이 재미있고, 치고받는 것이 시원하다.

권투경기는 서로 치고받으면 시원하다고 하고, 축구경기는 공격적이면 박진감이 있다고 한다. 치고받아야 재미있고, 재미있으면 변한다. 그래서 파괴가 좋고 개혁이 좋다. 그러나 파괴도 자기들만을 위해 자기들끼리만 하면 분하다. 지금은 비록 구경꾼이지만 한 때는 주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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