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문화예술제와 바르셀로나의 인간탑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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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홍보대행사 컴101 이사/전 중앙일보 기자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가 2010년에 국가 기록사랑마을로 선정됐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기록사랑마을은 국가기록원에서 지역의 소중한 기록 자료를 발굴하고 보존·활용하며, 지역과 국민이 그 가치를 알도록 장려하는 사업으로 2008년 강원도 정선군 신동면 조용8리가 제1호로 지정됐고 지난해 제8호까지 지정됐다.

안성리는 제3호다. 1780~1922년까지 호적중초(호적 자료)가 결정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밖에 허급문(토지매매증서), 통적(생존 인물들만의 호적부) 등 귀중한 자료가 31종 394점이나 보관돼 있다. 142년 동안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호적 사항을 기록한 것이나, 그것을 온전하게 보전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4·3을 겪으면서 불에 탈 위기가 있었지만, 마을의 어른이 죽음을 무릅쓰고 집 마룻바닥에 숨겨 보존할 수 있었다 한다.

호적중초는 4대까지 기록하고 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120년의 세월이다. 사실 백년의 역사는 4대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성리는 자랑스러운 곳이다.

전시물을 둘러보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인간탑 쌓기 놀이가 떠올랐다. 마침 인간탑 쌓기 놀이는 안성리가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된 2010년에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0여 년 전 바르셀로나의 메르세 축제 기간에 본 이 프로그램은 강렬했다. 사람의 힘과 허리띠만을 이용해 6층에서 10층의 탑을 쌓는데 어린아이와 청소년, 장년층, 노년층의 조화를 필요로 했다. 맨 아래층에는 힘 좋은 사람과 구경꾼들이 버티고, 맨 위에는 어린 소년 소녀가 위치한다. 협동의 예술 자체였다. 노하우는 후배들에게 전수된다. 그러니 18세기에 시작된 이 놀이가 당시의 이야기와 노하우를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탑 쌓기 놀이는 기록이 아닌 몸짓을 통해 역사를 전승하고 있었다.

이 놀이는 18세기 카탈루나 지방에서 시작됐다. 카탈루나는 스페인의 제1 상업도시인 바르셀로나가 주도로 있는 지방의 명칭이다. 바르셀로나는 여러 면에서 제주와 닮았다. 지중해를 낀 항구도시로 예술과 교육, 자연환경, 경제력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게다가 고유 언어인 카탈루나어도 갖고 있다.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 가우디가 태어나서 평생 살았고 그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아직도 건축 중인 곳이다. 미술가 호안 미로와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이며, 피카소 박물관은 미술 애호가들을 부르고 있다.

제주의 역사와 자연환경도 바르셀로나에 못잖다. 자연환경은 세계 7관왕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의 경쟁력은 아픈 역사다. 중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어나, 유배문화의 꽃인 추사체는 한국 문화의 자랑이다. 제주에서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절망 속에서 완성한 추사체는 우리 문화계가 크게 조망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마땅하다.

이제 제주의 차례다. 때맞춰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행사가 11월 4~5일에 열린다. 16번째 추사문화예술제다. 현재는 안성리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도 차원의 행사로 키워야 할 의미와 가능성이 충분한 행사다. 안성리처럼 기록을 중시하고 추사처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대회를 발전시킨다면 우리도 자랑스러운 후손이 될 수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추사 휘호 대회에 나란히 참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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