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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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고 노래했다. 윤동주가 아니어도 누구나 아름답고 그리운 말 한마디씩은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누나’란 말을 좋아하고 부르고 싶었다. 누나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누나 누나 하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듯이 포근해진다.


사회 구조가 달라지면서 사라져가는 고운 우리말이 많아지는 게 아쉽다.


윤동주처럼 불러 본다면 누나, 형, 이모, 고모. 이웃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누나, 이모, 고모는 저출산의 영향이고 이웃은 사회구조가 달라져 단독주택이 아니라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나 역시 아파트가 편해서 살기는 하지만 이웃이 없어지는 게 안타깝다.


요즘 초등학교에 가서 ‘누나 있는 사람?’ ‘이모 있는 사람?’하고 물으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필 것이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기도 어려운 현실이니 어디 형이 있고 누나가 있으며 이모 고모가 있겠는가.


이웃! 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깝다’, ‘따뜻하다’, ‘포근하다’, ‘든든하다’, ‘그립다’ 등 긍정적인 어휘들이다. 그 이웃이 없어지는 것은 아쉽고 슬픔을 떠나 인간의 근원적 고독 속으로 빠져드는 비애라 할 것이다.


이웃의 좁은 개념은 ‘한 올레 안에 맞대어 사는 사람들’ 일 것이다. 우리 제주에서는‘ 제사떡 나눠 먹는 집’ 정도일 것이다. 자신의 경계와 맞닿아있는 집이 이웃집이고 우리 마을과 맞닿아 있는 마을이 이웃마을이고 우리 제주도와 맞닿아 있는 곳이 ‘제주도이웃’이다.


그러나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때의 이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이웃)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아웃사랑을 가르치셨다. 어려운 이웃은 꼭 가까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종교적으로 넓은 의미의 이웃일 것이다.


요즘 해괴망측한 어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제주도 이웃이 타고 있습니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어휘를 잘못 사용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우리 이웃이 타고 있습니다’ 라면 바른 표현일 것이나 ‘거 누게 몰람서? ’라고 말할 도민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딱 맞는 어휘 하나 (一物一語) 골라 쓰기 위해 밤새우는 시인의 고충을 헤아릴만하다.


제사떡 나눠 먹을 따뜻한 이웃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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