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다리·쉰다리·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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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가을이 성큼 익어 간다. 어제 내린 비를 머금은 콩대가 짙은 녹색을 뽐내고 있다. 참새들도 먹을거리를 탐색하는 비행이 잦아지고, 농부는 황금빛 들판을 머릿속에 그리며 밭으로 나선다. 냉장고를 열어 순다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전통음식 관련 행사를 참관하고 돌아온 아내가 받아 온 유인물을 앞으로 들이민다. 배울 거 하나도 없는 행사였다며 시간 낭비했다고 불평이다.

들여다보니 잘못된 정보가 여러 곳이다. ‘쉰다리는 부패한 밥으로 만들었다. 좁쌀을 발효시켜 만든 감주.’ 등 전문가라는 사람이 부끄러운 정보를 올렸다. 그 행사에 쓰인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왜 그런지,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활개 치고 진짜 보석은 빛을 보지 못 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잖은가.

제주 토속 음식 중에 막걸리를 만드는 방법과 유사한 음료가 있다. 밑술이나 촉진 균을 넣지 않고 자연 발효하여 만든다. 육지에서는 단술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순다리 또는 쉰다리라 부른다. 어원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무슨 뜻을 함유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짐작만 할 뿐.

어렸을 적부터 어깨너머로 쉰다리를 만드는 걸 보며 자랐다. 아홉이나 되는 식구가 먹을 많은 밥을 하다 보면 남은 보리밥이 하루나 이틀이 지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코를 가까이 대면 시금한 냄새가 난다. 적은 양이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는 먹이지 못하고 물에 헹궈 마늘장아찌와 함께 당신이 그릇을 비우시곤 했다. 그게 양이 너무 많으면 누룩과 물을 넣어 쉰밥을 이용한 발효음식을 만들었다. 가열하여 알코올을 날려 버리고 당원이나 사카린을 조금 넣으면 아이들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아내는 쉰밥이 아닌 고두밥을 지어 만든 경우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순한 유산균 음료이니, 어머니가 쓰던 용어인 순다리가 바르다고 우긴다. 장모님은 종갓집 종부로 삶을 살다 가셨다. 옛날이라 공식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주변은 물론 이웃 마을까지도 알아줄 만큼 전통음식에 일가를 이루신 분이었다.

나도 미생물연구에 25년을 몰두해 왔다. 현미경을 만들어서 균을 보며 배양하고 기업체 여러 곳을 대상으로 실험연구해 논문을 썼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오감과 육감을 동원하여 활용해 온 옛 어른의 주장을 반박할 자신이 없다.

미생물학자들은 미생물의 실체를 0.1%~10%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이니 누가 아는 체를 하겠는가. 그런 어머니께 어깨너머로 전수 받아 전통음식 교육장을 운영하는 아내와 맞설 생각도 없다.

아주 조금 아는 체를 한다면 음식물이 부패했다 함은 해로운 균이 독성 물질을 내뿜어 썩어 버린 것이다. 쉰다리를 만들 수 없다.

쉰 것은 부패가 진행되기 전 과정이다. 시금한 냄새가 난다. 보리밥이 시지근할 때 쉰다리를 만들었지 부패한 썩은 밥으로 만들지 않았다.

발효를 위해 누룩을 첨가하고 알코올 발효를 한 다음 호기성 미생물인 초산균을 얻었을 때는 시다는 뜻인 신맛이다. 식초는 강한 신맛이 나야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발효식품과 당화 식품쯤은 제대로 구분을 해야 하고, ‘삭히다’ 와 ‘삭이다’의 뜻을 전하는 것쯤은 강사의 기본 상식이다.

아내가 늘 하는 말이다. 지역마다 전통으로 만들고 있는 밑술인 촉진제를 넣어 발효시키면 막걸리, 쉰밥으로 만들었던 가정집 막걸리는 쉰다리, 고두밥을 부러 지어 아이들도 먹을 수 있게 알코올을 날려 버린 유산균 음료는 순다리로 용어를 정하면 참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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