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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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이웃’은 가깝다는 뜻으로, 쓰이는 범위가 비교적 넓다. 이웃 마을 하면 지역을, 서로 잘 지낸다고 하면 가까이 사는 사람 또는 그 집이다. 이웃 나라라거나, 우리 집은 읍사무소와 이웃하고 있다 하면 서로 가까이 있다 함이다.

지역, 사람, 나라 혹은 위치한 곳을 망라한다. 적용 범위를 떠나 한국적인 정서가 무르녹아 있는 정겨운 말이 이웃이다.

그중에도 제일 많이 쓰이는 게 이웃사촌으로, 어휘구조부터 색다른 조합이다. 사촌은 아주 가까운 친척인데 이웃이 사촌 아닌가. 사촌을 넘어 형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유교사회로 사람 사이의 정이 도타웠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예다.

서로 이웃에 살면서 친해져 사촌이 또는 형제 같다 함이다. 인정이 넘친다. 에헴, 수숫대 바자울 너머 헛기침으로 인사하는 시골 풍경을 떠올린다. 낮은 울타리가 이웃의 상징이었다. 몸이 멀면 정도 멀어진다고 한다. 피를 나눈 형제여도 멀리 떨어져 살면 이웃만 못 하다. 이치에 닿는 말이다. 화급하거나 힘든 처지가 돼 봐야 그 고마움을 안다.

“…이웃사촌이라고 급할 때는 떨어져 사는 딸보다는 한 지붕 밑에 사는 그 사람들이 더 의지가 되실 거 아녀요?…” 새삼 생각나는 박완서의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에 나온 그 한 구절.

이웃끼리는 황소 놓고도 다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손익(損益)을 떠나 이웃과는 화목하게 지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이웃을 무척 소중히 여겼다.

‘삼이웃’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흔히 쓰는 이웃사촌과 통하는 말이지만, 그보다 유대감이나 결속력이 훨씬 강하다.

‘삼(三)’을 풀어 보면, ‘세 이웃’이 된다. 특정한 이웃집이 아닌, 가까이 있는 여러 이웃을 통틀어 묶는 말이다. 오늘날 주된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경우, 한 건물 안에서 이쪽과 저쪽으로 다른 세대가 이웃하고 있다. 이쪽저쪽 이웃을 합쳐 ‘삼이웃’이다. 말로 할 때도 ‘삼니웃’으로 ‘ㄴ’을 연음해 발음한다. 그쪽이 훨씬 끈끈한 느낌을 준다. 음운 표기상 정확히 적어 [삼니욷]이 된다.

“부실공사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우리 아파트에서도 삼이웃이 한자리에 이마를 맞대고 앉아 안전 대책을 숙의했다.” 이웃끼리 얼마나 정다운가.

한데 점점 변해 가는 주거문화가 짜장 이웃을 외면하려 든다. 해체 위기다. 이제 이웃사촌은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감마저 들 지경이다. 층간소음, 주차 문제 등으로 분쟁이 잦은데, 그도 도를 넘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는 형국 아닌가. 안 싸우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심각한 게 현실이다.

예전에는 동네 구석구석 모르는 집이 없을 만큼 가까웠는데….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과도 아는 척만 할 뿐이니 이웃사촌, 삼이웃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격세지감을 떨치지 못한다. 삭막한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사라져 버린 훈훈한 이웃 정이 그리운 시절이다. 어떻게든 이웃을 부활시켜야 할 텐데 무슨 방책이 있겠는가. 이웃의 관계가 무너져 버린 씁쓸한 자리에 우리가 서 있다면 이런 슬픈 일이 없다.

지역 포털 사이트에 ‘사이버 이웃사촌’이라는 새로운 주거문화가 꿈틀하고 있다 한다. 주변의 학교, 관공서, 부인회, 부동산, 상가 등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육아·성교육에 관한 정보도 건져 올린다는 얘기다.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 카운슬러가 대답도 해준다니, 이처럼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라도 이웃이 교섭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서로 정을 주고받는 이웃 사랑의 문화가 생활공간으로 다시 번졌으면 좋겠다. 삼이웃이 그리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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