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엔 눈감고 안에선 싸우고
바깥엔 눈감고 안에선 싸우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함성중 논설위원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지식인 노릇 어렵기도 하누나.” 일제에 의해 망국 직후 음독자살한 매천 황현의 절명시 한 구절이다.

자결에 앞서 남긴 유서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단지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나라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자신은 벼슬을 하지 않았으니 사직을 위해 지켜야 할 도리는 없지만 백성의 하나로 명예롭게 순명(殉名)한다는 것이리라.

1910년 경술년 8월 29일, 519년간이나 지속된 조선이 망했다. 오늘날 우리는 ‘경술국치’ 혹은 ‘국치일(國恥日)’이라 부른다.

▲우리 민족사의 수난은 거의 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 일어났다. 비극의 역사를 복기하면 1580년쯤 태어나 1640년을 넘기며 살았던 이들이 역사상 가장 불행했을 거라고 한다. 그들은 10대에 임진왜란을, 40대에 정묘호란을, 50대에 병자호란을 겪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실린 당시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굶주림이 만연하고 역병까지 겹쳐 대부분 죽고 백명에 한 명꼴로 살아남았다. 부모 자식과 부부가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정묘·병자호란 때도 매한가지다.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고 수만명이 노예로 잡혀갔다고 인조실록에 전한다. 구한말엔 열강들이 한반도를 마당 삼아 땅 뺏기 싸움을 벌이며 나라를 도륙했다.

이들 수난사엔 공통점이 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고 내부에서 우리끼리 열심히 싸우다가 당한다.

▲북한의 핵 개발로 촉발된 안보 위기가 첩첩산중이다. 이런 위중한 정세에도 우리는 그 지독한 이념 갈등이 되레 증폭되는 형국이다. ‘죽은 권력’에 대한 적폐 청산과 응징의 앙갚음이 난무한 것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이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 고소했다. 이미 사망한 전전전(前前前) 대통령을 둘러싼 수사가 시작된 셈이다. 전전(前前)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이 수사를 촉구하고 있고 서울시장이 직접 고소까지 한 상태다. 전(前) 대통령은 이미 탄핵돼 투옥 상태서 재판 중이다. 모두가 ‘전쟁 위기’라고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위기보다 두려운 건 국론 분열이다. 역사에 눈을 감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설마하는 정치는 국가를 패망으로 이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