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궷물오름-억새따라 가는 길은 인생 최고의 소풍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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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소가 목을 축이고 목동들이 모여 쉬던 곳
▲ 궷물오름 가는길. 너른 평야 뒤로 큰노꼬메 오름과 작은노꼬메오름이 보인다.

제주시 애월읍은 농업과 수산업, 축산업이 주를 이루는 전형적인 농어촌이다. 그 가운데 애월읍 장전리는 주로 목장이 형성돼 예로부터 소와 말 등 목축업이 성행했다. 그 목장의 중심에는 궷물오름이 우뚝 솟아있다. 말과 소에게 먹을 것과 길을 내주는 풍요로운 오름이다.

 

오름의 이름은 궤+물의 조합으로 여기서 궤는 바위 아랫층의 공간이나 바윗틈을 따라 생겨난 공간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오름 주변에서 용출되는 샘물이 여러 곳 있으며 이를 궷물이라 부른다.

 

물이 스며드는 현무암 지대의 제주에서 샘은 무척 귀했다. 궷물은 과거 제주인과 말·소의 목을 축여주는 귀한 젖줄과도 다름없었을 것이다.

 

궷물오름의 한자 표기는 괴수악(怪水岳)으로 표기하는데 일부 한자 표기의 경우 이 궤를 고양이를 뜻하는 제주말의 괴(괴이)로 이해하여 묘수악(猫水岳)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오름은 해발고도가 597m로 비교적 높지만, 비고(比高)는 57m에 불과해 오르기가 쉬운 편이다. 북동쪽으로 트인 말굽형 분화구를 가진 오름 둘레는 1,388m. 해송과 삼나무로 숲을 이룬 궷물오름은 정상까지 쉬엄쉬엄 걸어 올라가도 30분이면 도착해 가벼운 산책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오름 트레킹 중엔 테우리 막사도 볼 수 있다. 테우리는 소와 말을 먹이는 일을 하는 목동을 일컫는 제주어다.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추워질 때 테우리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샘을 내줬던 오름은 이렇게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오름 정상에서는 매년 음력 7월 보름에 무사봉목을 기원하는 백중고사를 지내는 등 선조들의 목축문화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오름 정상에 오르면 남동쪽으로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을 조망할 수 있다. 봉긋한 산등성이가 이어져 보여 풍족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북쪽으로는 짙푸른 제주 앞바다와 제주시 서부지역 일대, 제주경마장이 시원스레 한 눈에 들어온다.

 

오름의 분화구에서는 2군데에서 용천수가 흘러나와 중앙부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와 오른쪽 실개천처럼 흐르는 곳 상부에 시멘트로 수로를 만들어 물을 이용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궷물오름이란 이름은 '궷물'이랑 샘이 있어 붙여졌다.

궷물을 모아두기 위해 시멘트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구조물 바닥에는 일제시대인 ‘소화 12년(1937년) 8월 준공’이라는 기록도 남아있어 음용수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며, 바로 옆에는 치성을 드리는 자그마한 제단도 마련돼 주민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오름의 주변은 조선 초기인 세종 11년(1492)에 제주마 관립목장 조성 당시 5소장이 위치했던 곳으로, 지금도 잣성의 원형이 일부 남아 있다. 잣 또는 잣담으로 불리는 잣성은 중산간 목초지에 말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돌담으로 만든 일종의 경계선이다.

 

잣성은 돌담을 두 줄로 쌓은 겹담 구조로 말들이 한라산 산림지대로 올라가 길을 잃고 동사하는 것을 막는 상잣성, 저지대로 내려가 농작물에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잣성, 말들이 이동하는 중잣성이 있다.

 

또한 궷물오름 주변은 노꼬메와 족은노꼬메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돼 있어 세 개의 오름을 한 번에 탐방할 수도 있다. 아울러 주차장, 음수대, 정자 등 여러 편의시설도 잘 마련돼 있는데다, 생태학습장도 있어 휴식을 즐기기도 좋다.

 

주말에 고된 일상을 내려놓고 궷물오름을 가볍게 올라보면 어떨까. 이제 막 피어오르는 억새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가을을 만져볼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소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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