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강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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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시조시인

학원(學園) 강석범(康錫範 1917~1979) 선생은 한 마디로 제주 사학의 발전을 위해 평생 선구적 역할을 한 교육자다.


올해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다. 그래서 지난 9월 학원 선생을 흠모하는 제자들과 장자 강영민(아남학원 이사장) 박사를 비롯한 친지들이 선생을 기리는 뜻있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선생은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어려운 학생들을 보듬고 사랑한 분으로 회자되고 있다. 1950년 젊은 나이에 제주중학교 교장이 된다. 당시 6·25 사변으로 고난의 여건에서도 제주초급대학 인가를 받아 제주대학교의 모체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교직 담당 교수가 되어 교직과목을 신설, 학생들이 교사자격을 취득하게 하였다. 때문에 훌륭한 교사들이 양성되어 제주도 중등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53년엔 제주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한다. 특히 주간뿐만 아니라 고학생들을 위해 야간까지 개설하여 실업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권력에 아부할 줄 몰랐고, 정의를 위해 앞장섰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을 당선시키기 위한 3·15 부정선거에 당당히 맞서 자유당 독재 타도를 위해 부르짖기도 했다. 서슬 푸른 군사정권에도 당당히 맞서다가 제주대학 교수직과 교장직을 박탈당했다. 법정 투쟁 끝에 되찾기는 했지만 정치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애주가였다. 술에 취하면 야릇한 말과 행동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곤경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여름날 삼양해수욕장에서 검은 모래뜸을 하고 있는 군 출신 K 도지사를 보게 되자 배를 밟아버리겠다고 달려갔다가 수영복 차림으로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혔던 일도 있었다.


또한 술판에서 교육부 장학관을 타고 말놀음을 한 일, 교육부장관이 머무는 호텔로 밤중에 찾아가 ‘너가 뭔데 내 교장직을 잘랐느냐?’고 호통을 친 일, 흰 고무신을 신고 한쪽 바지 끝을 걷어 올린 채 당당하게 칠성통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를 활개 치던 기인 아닌 기인이었다.


연락처도 없이 ‘제주도 강석범’이라고만 쓴 명함을 갖고 다닌 교장.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이면 탑동 방파제로 산보를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에 품고, 교육입국을 위해 기도하던 모습 등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1973년엔 제주전문대학(현 제주국제대학교)을 설립·개교하고 초대 학장이 된다.


‘우륜(宇輪) 속에서 대아(大我)를 개척(開拓)하자’ 는 학훈을 내걸고 전문대학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제 가신 지 38년, 3만 여 명에 가까운 제자들이 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사는 삶을 산 ‘인간 강석범’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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