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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심 / 수필가

예기치 못한 비가 내린다. 소설도 지났으니 이제 눈이 와야 하는데 비라니. 여름 내 무성했던 잎들은 다 지고 빈 가지만 남아 비바람에 떨고 있다. 화단에 쌓아놓은 마른 풀무더기도, 길 위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온 세상이 다 비에 젖고 있다. 빗물이 흘러가듯 계절도 흐르고 삼라만상 모두가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시어머니 정기 검진일이어서 병원에 다녀왔다. 백세에 이른 몸이라 거동이 불편하여 등에 업고 가야 했다. 다리가 뻣뻣해서 업는데도 조심스러웠고 미끄러져 내릴까봐 허리도 펼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등에 업히자 찰싹 엎드리며 팔에 힘을 주고 내 목을 꽉 껴안았다. 무게가 있는데도 마른 풀  느낌이 났다. 육신에서 시간은 다 빠져나가고 영혼만 남아있는 듯했다.  “나 얼마나 살크니?(얼마나 살 수 있겠냐?)”  “재게 죽어브러야 할건디.(빨리 죽어야 할 건데.)”  “또 쓸데없는 소리. 어머니가 오래 살아야 나 하는 일이 잘될꺼 아니꽈(잘될 게 아닙니까.)” 마흔이 넘어 늦게 얻은 아들이 오면 늘 시어머니는 이렇게 묻고 대답을 듣는다. 남편은 수건에 물을 적셔 어머니 눈을 꼭꼭 눌러 닦으며 시원하시냐고, 오래 오래 사셔야 한다고 다짐을 놓는다.

 

시어머니는 1916년생이다. 몇 달만 지나면 백세 생신이니 한 세기를 살았다. 실감나지 않는, 긴 시간들을 살았고 지금도 이 순간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시어머니가 살았던 백년에 걸친 그 시기는 세계적이나 국내적으로 역사적인 일들이 일어났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많은 혼란과 변화가 있었다. 변화무쌍했던 역사적 소용돌이들이 속에 여자의 몸으로 한 세기에 걸친 삶을 살아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느 시대건 약자의 삶은 늘 고달프다. 시어머니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만큼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후의 삶도 지극히 어려웠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새어머니 밑에서 집안일과 밭일을 하느라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글도 못 배우고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운명은 기구했다. 결혼은 했지만 사고로 남편을 잃고 스무 살 무렵의 나이에 아이를 업고 일본가는 배 ‘군대환’에 몸을 실었다. ‘군대환’은 제주도와 일본 오사카 지방을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정기여객선이다. 1920년대 일본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제감정기하의 제주도 역시 매우 궁핍한 상황이어서 돈을 벌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들도 이 배를 타고 들어가 열악한 노동환경과 민족적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을 했다고 한다.


광복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극적인 역사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온 섬을 도탄에 빠지게 한 제주4.3사건의 광풍에 시어머니의 가족도 예외 없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아이 여덟을 낳아 오누이 둘만 남았다고… . 가슴이 텅 비어버린 듯 쉰 목소리에 무연한 눈빛, 허망이 깊어 무심이 되었을까. 삶의 고단함, 무상함, 어찌해볼 수 없는 운명적인 것들이 소리 없이 쏟아져 나왔다. “쇠(소)로 못나면 여자로 나는 거여”

 

가슴이 서늘했다. 이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잠깐 살다가는 삶이 왜 이토록 가혹해야 하는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었다.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냥 받아들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내 무릎을 내어 드리고 싶었다. 살면서 누구한테 감정 내놓고 마음대로 해본 적 있었을까. 주어진 삶 살아내기에 여념이 없어 상처 나서 헤진 마음도 몰랐을 텐데.

 

손이 참 곱다. 어린아이 손처럼 살결이 보드랍다. 이불 밑에 있던 시어머니 손을 꺼내어 만져본다.  “고맙다.” 어루만지던 내 손을 꼭 잡으며 웃는다.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 분이 내 눈을 마주하고 웃었다. 눈물이 고인 듯 선한 눈. 먼 길을 돌아와 이제는 쉬고 싶음인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딘가로 가야 하는 길목에서 마음은 더 지극해진다. 언젠가 불쑥 들이닥쳐 황망하게 정리해버리겠지만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비가 그쳤다. 빗줄기는 사라지고 저물녘 어스름이 내리고 있다. 이제 집안에 불을 지펴야겠다. 식구들이 돌아와 아랫목에 손을 집어넣고 몸을 녹이며 하루의 노곤을 풀 수 있게. 어둠이 오는 고요한 시간. 오늘 하루도 영원으로 묻혀간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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