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논술 쏙쏙] 생명윤리에 대한 몇 가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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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료 윤리의 문제 - 안락사

의사의 임무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 되살린다는 말에는 위독한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음이 물론이다. 적어도 의사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환자의 생명을 자신의 의도로 그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항암치료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가 자신을 죽게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한다면 어떻게 될까? 추하게 죽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며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환자에게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의사는 환자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적인 문제로 인하여 상당히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쟁점에 안락사가 있다. 안락사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의사들의 고민을 심화시키는 쟁점이다. 자신의 힘으로 죽을 수도 없는 환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실제 수백 명의 환자에게 죽음의 주사를 시술한 프랑스의 어느 의사에게 전 세계인의 비난과 격려가 교차하는 현상은 안락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직업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2001년에 ‘의사 윤리 지침’을 만들었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환자 또는 환자 가족들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문서로 치료중지를 요청할 경우 의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내용이 있고, 또한 소생 불가능한 심폐소생술의 중지 요청에도 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환자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의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 자문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들의 윤리 지침에 이러한 문구가 명시된 것은 1998년에 사회적 이슈를 몰고 왔던 보라매 병원 사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치료를 중단하면 곧바로 숨질 가능성이 높은 중환자를 ‘가족의 요구’로 ‘의학적 충고에 반한 퇴원’으로 숨지게 했다는 이유로 의료진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그 사건은 치료비 등의 이유로 ‘치료중단’이라는 소극적 안락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의사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문제는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환자의 고지된 승낙에서 환자의 충분한 동의를 얻었는지의 문제나 생명유지 장치의 중단 및 보류에서 보호자의 권한이 남용되지는 않은지 등에 많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치료의 결정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에 관한 문제도 역시 쟁점이다. 안락사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 인정하는 미국의 경우나 “안락사는 범법행위이나 생명을 박탈할 특별한 경우에만 인정”한다는 프랑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률적인 규정을 적용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프랑스에서 “말기암 치료나 고통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을 때에만 허용돼야할 것”이라고 강력한 유보 조항을 달아놓은 것에서 그 신중함의 정도를 헤아려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실정법과 현실적 괴리 때문에 따른 논쟁으로 사회적 손실 크다.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안은 생명윤리위원회 등을 통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 법적 제도적 보완 서둘러야 한다”는 견해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소극적 안락사를 이제 사회가 일부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생명윤리위원회 등을 만들어 뇌사 판정을 거친 후 합법적 행위로 승인해야 한다.”는 의료번문 변호사와 교수의 의견에 정부와 종교계에서 거세게 반발하는 것을 보면 이 사안이 매우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음을 알려 준다.

환자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가담하지 말 것을 강조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마지막으로 신들께 바라나니,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파괴하는 일이 없다면 영원히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생애와 기술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또한 만일 이 선서를 파괴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 반대의 보답이 있도록 하십시오.”라고 기원하고 있다.



2.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의 쟁점

얼마 전 배아복제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한창 화제가 되었다. 난치병 치료의 신기원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큰 기대를 갖게 하였고,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수준을 세계적인 반열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욕망은 언젠가는 개발을 통해 얻은 이익보다 더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적지 않은 반향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안하는 것이 윤리적 자세이다, 문제는 줄기 세포 연구의 경우 막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지 어떤지 결론을 내리기가 난감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난치병 등 인간생명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고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규범이나 기준, 가치관 같은 것으로 기술 발전에 제동을 걸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건 안 돼”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하자, 하자”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못하게 막았다가 나중에 기술의 미래를 닫아버렸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는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와 나눈 대담을 엮은 ??대담??에서 이 딜레마를 “현대인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아주 인간적인 시련의 경험”이라고 보고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지독한 모호성을 ‘미끄러운 비탈(slipper slope)’이라는 표현을 빌려 표현하였다. 그는 미끄러지면 천 길 낭떠러지, 잘 타고 넘어가면 낙원이 될 수 있는 이 문제는, 부정적인 측면이 전면에 부각될 경우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서 무릎이 까졌다는 정도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이 통째로 망할 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 논의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줄기세포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것으로 유한하며 단 하나뿐인 개개인의 인간 생명을 복제하여 더 이상 유한하지도, 하나 뿐인 생명체도 아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 존엄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려는 과학 기술의 발전노력이 오히려 인간의 삶의 근저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경고가 된다. 그것이 인간의 생명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생명공학 연구의 어려움이다. 도정일 교수가 표현한 ‘미끄러운 비탈’은 깊은 경고를 포함하고 있다.



3. 자살의 사회적 의미

자살은 자신이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문제이다. 그런데 고3 수험생들이나 IMF 당시에 실직한 가장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살을 결심하거나 실행한 사람은 온전히 개인적인 동기만으로 죽는 것이 아니다.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것은 성적제일주의,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사회 문화적 원인이 있는 것이고, IMF는 경제 정책의 실패라는 사회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렇듯 자살에 이르는 동기가 사회적 배경이나 환경에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는 사회적 문제로 검토해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자살률이 증가할 때마다 신문에서 그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노미 현상’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회학에 도입한 사회학자인 메밀 뒤르켐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양상을 검토한 책, ??자살론??의 저자로도 유명한데, 그는 이 책에서 자살의 유형과 그 원인을 섬세하게 다루었다. 그는 서문에서 “개인이 개인을 초월하는 도덕적 실체, 즉 집합적 실체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표현을 하지 않을래야 안할 수 없다. 자살률의 상승은 각 사회의 자살촉진계수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고 하여 자살에는 분명 깊은 사회적 연관이 있음을 밝혀 주었다. 자살을 권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거나 바람직한 사회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자살이 개인의 가치와 사회의 가치가 충돌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 원인이 된 경우라면 이는 동기의 측면에서 사회 문제의 하나로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원인에 의한 자살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성적비관은 궁극적으로 학벌사회가 원인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므로 대학의 입시정책이 성적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면 자살의 원인을 완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문제가 원인이라면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경제적 상황의 문제가 없었는지를 살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자살의 문제에는 역시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의지가 중요한 논점으로 주목받아야 함이 물론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생명에 대한 의지와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의 여부는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 자살 문제의 사회적 의미는 사회적으로는 그러한 의지를 낼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함영대·1318논술연구소 강사>



(실전연습)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의사 아폴로와 아스클레피우스, 퓨기에이아, 파나케이아를 비롯한 모든 남녀 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이들 신을 증인으로 하여 나는 맹세하노라. 나의 능력과 판단을 다하여 이 선서와 규정을 지킬 것을 약속하노라. 나에게 이 기술을 준 사람을 부모처럼 생각하여 생계를 함께하고, 이 분에게 급전이 필요하면 나의 금전을 나누어 드리고, 이 분의 제자들을 나의 형제처럼 대하리라. 만일 그들이 이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보수와 계약서를 받지 않고 가르쳐 주리라.

나의 자식들과 내 스승의 자녀들, 의사의 법도에 따라 서약을 한 학생들에게 나는 의사의 마음가짐과 강의,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을 가르치리라. 그러나 이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능력과 판단력을 다하여 식이요법을 실시할 것이다. 이는 환자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며 가해나 부정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노라.

누구의 부탁을 받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와 같은 조언을 하지 않으리라. 부인에게 낙태용 기구를 제공하지 않고 내 생애를 순결하고 경건하게 보내면서 나의 기술을 실시하리라. 방광 결석 환자에게는 나 혼자서 결석 제거술을 시행하지 않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 위임할 것이니라.

어느 집에 들어가도 이는 환자의 행복 때문이며, 모든 고의적 부정과 가해를 피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그들이 자유인이건 노예이건 간에 정교(情交)를 나누지 않으리라. 치료할 때 보고 들은 것, 치료에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침묵을 지키리라.

마지막으로 신들께 바라나니,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파괴하는 일이 없다면 영원히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생애와 기술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또한 만일 이 선서를 파괴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 반대의 보답이 있도록 하십시오.



[논제] 위의 제시문에서 말하는 ?선서?의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밝히고, 이러한 의식이 오늘날의 생명윤리의 문제에 당면한 현대인들에게 특히, 의료 종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 (7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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