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리 ‘통기레쓰’를 찾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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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익어가는 가을, 바람 따라 물 따라, 대학 동문 일행과 가을 걷기를 했다.

먼저 ‘용눈이오름’을 오르니 상쾌한 산바람에 억새꽃이 휘날린다. 정상에 올라 오름 전경을 바라보니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았다.

이어 발걸음을 월정리로 옮겼다. 월정은 아름다운 곳이다. ‘월정’이 ‘달 물가[月汀]’란 지명에 정취(情趣)가 깃들어 몇 번 가보았다. 월정 해변의 모래는 너무 부드럽고 곱다. 섬섬옥수보다 더 부드럽다.

월정리 어촌계 앞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어떤 농아 아주머니가 껌을 내밀었다. 빨간 글씨로 ‘사랑의 손길’이 적힌 껌 봉지를 보고 샀다. 껌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일행은 월정 해변 길을 걸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걷다가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껌 봉지를 꺼내어 동행하는 동문들에게 한 알씩 나눠 주고 껌을 씹으면서 걸었다.

껌을 다 씹고 나서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았다. 왕복 5km 정도 해변 길을 걸으며 아무리 찾아보아도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다. 끝내 휴지통을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다 씹은 껌과 봉지를 손에 쥐고 걷다가, 해변 정자 밑에서 일행에게 말했다.

월정리에는 쓰레기통 하나도 볼 수 없다고. 그러자 한 동문이 ‘지금 행정이 거꾸로 가니 세상이 거꾸로 가는 거’라면서, ‘쓰레기통’을 거꾸로 말하면 ‘통기레쓰’가 되니 차라리 그게 좋겠다. 나더러 글을 쓰라고 권유하니 망설였다.

끝내 껌을 버리지 못하고 귀가하여 내 집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청정 제주가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버리는 손 나쁜 손 줍는 손 고운 손’이란 생태 숲의 팻말이 늘 내 머리 깊숙이 박혀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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