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너를 생각하며 서귀포 하늘에 편지를 띄운다
늘 너를 생각하며 서귀포 하늘에 편지를 띄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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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서귀포 칠십리 야외 공연장

서귀포는 진이 누나를 생각나게 한다

 

김영남

 

누나라는 말 속에는

밭이 있고, 언덕이 있고, 돌담이 있습니다.

그러한 풍경 속에는 또

서귀포라는 아름다운 항구가 있습니다.

오늘 나는 서귀포의 돌담길을 거닐다가

누나라는 말에 너무나 어울리는 풍경이다 싶어

누나! 하고 불러 봤습니다.

내게 없는 누나가

저 돌담의 오렌지밭 한가운데서 오렌지를 따다가

광주리를 팽개치고 달려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지요.

그러면 내 누나는 밭가에서

놀란 눈으로 나의 가방을

받아들이겠지요?

네 색시는? 네 아이들은? 아버님은? 하며

뒤가 없는 질문도 연방 던져오겠지요?

그러다가 눈 주위가 갑자기 붉은 귤밭이 될 누나.

 

 

 

▲ 이정환 시인이 서귀포 칠십리 야외 공연장에서 진행된 바람난장에 참여해 노래하는 모습.

서귀포가 바람난장 식구들을 초대했다. 함께 맘껏 즐기고 놀아 보자고 우리를 불렀다.

 

바람이, 바다가, 그리고 노래하듯 춤추듯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들이 행복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와 만나고 싶었나 보다.

 

늦은 저녁, 우리가 칠십리 야외 공연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 일대가 축제 분위기로 익어가고 있었다. 3일에 걸쳐 진행되는 ‘제1회 서귀포 夜行 페스티벌’ 둘째 날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니 일단 배를 채우기 위해 공연장 근처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서귀포예총에서 준비해 준 거나한 저녁을 감사히 먹었다. 배가 든든하니 이젠 축제장으로 뛰어들어야 할 시간!

 

드디어 바람난장이 시작되었다.

 

색소폰 앙상블 팀이 무대에 오르자 바람이 불었다.

 

새섬을 돌아 나와 새연교를 건너왔을 그 바람이 저들보다 더 세찬 난장판을 시샘하느라 관객들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70, 80년대에 청춘의 불을 지폈던 음악동료들이 모여 제주 고유의 음률을 다양한 기법으로 재즈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하는 ‘핫 사운드빅’의 첫 연주곡은 ‘삼다도 소식’이다. 어찌 함께 따라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히 ‘떼창’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어지는 ‘아! 목동아’와 ‘오돌또기’ 연주의 감흥은 불빛에 반짝이는 천지연 앞바다의 아름다움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관객 중 몇 명은 그 흥을 감출 수가 없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서귀포에서는 늘 누군가를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연인을, 때로는 떠나간 친구를, 그리고 한 편의 詩를 생각나게 한다. 서귀포와 참 잘 어울리는 시낭송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강서정!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김영남 시인의 시 속에 등장하는 진이누나를 닮았다. 멀리서 찾아온 동생의 가방을 받아 들고 뒤가 없는 안부를 묻다가 눈시울을 붉힐 것 같은 누군가의 누나를.

 

▲ 강서정 시낭송가가 김영남 시인의 시 ‘서귀포는 진이 누나를 생각나게 한다’를 낭송하고 있다.

강서정 시낭송가가 낭송하는 ‘서귀포는 진이 누나를 생각나게 한다’를 들으며 우리는 각자의 마음 속에 묻어 둔 사랑하는 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당신이 앉았던 자리마다 꽃입니다. 당신이 우러르던 하늘마다 꽃입니다. 터질 듯 보듬어 안던 그 시간도 꽃입니다.’ 멀리 대구에서 ‘오늘의 시조 시인회 이정환 의장님이 찾아와 바람난장의 가족이 되어 노래를 불렀다. 직접 작사한 노래를 부르는 시인의 열정은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노래하는 내내 여기저기서 환호가 계속되었다. 무대를 휘어잡는 목소리와 스텝은 결코 아마추어라고 할 수 없었다.

 

우리는 흥을 주체할 수가 없어 근처 허름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바람난장을 이어갔다. 지난 겨울 동안 온기를 뿜어냈을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았다. 김순자 시낭송가는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방울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또 한 편의 시를 들려주었다. 고명호 시인의 ‘안됐다고 묻는 저녁’을 감상하는 동안 밤바다는 더 깊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따뜻한 찻잔을 쥐고 있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니 파도 소리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무병장수의 도시, 서귀포!

 

그리고 서귀포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이 있다. 남극노인성이다.

 

▲ 김순자 시낭송가가 고명호 시인의 시 ‘안됐다고 묻는 저녁’을 낭송하고 있다.

서귀포예총 회장인 윤봉택 시인으로부터 남극노인성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별을 상상해 보았다. 추분부터 춘분까지 6개월 동안 남극노인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면 3시간이고 짧으면 30분이라고 한다. 옛말에 ‘노인성을 알면 선비고 모르면 선비가 아니다.’ 라고 하여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이 남극노인성을 보기 위해 부러 서귀포를 찾아왔다고도 한다.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함께 자리했던 홍진숙 화가가 자신이 그린 남극노인성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무병장수의 별이라고 들어서 그런지 모두들 그림과 눈을 맞추느라 또 한 번 즐거운 웃음이 카페 안을 두둥실 흔들어댔다. 시계 없는 벽에 걸린 등불이 졸다 깨다 했다.

 

글=손희정

낭송=김순자, 강서정

노래=이정환

사진=이상철

그림=홍진숙

연주=색소폰 앙상블(핫 사운드빅)

 

 

※다음 난장은 10월 21일 오전 11시 서광리 오설록에서 정낭난장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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