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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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읍내에 살면서 시내 나들이를 주로 버스로 한다. ‘주로’라 함은 ‘가솔이나 남의 차 신세지는 건 빼고’라 하는 의미다.

핸들을 잡아 보지 못한 처지라 대중교통을 편애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전의 변화에 민감한 건 당연하다.

몇 년 새, 인구와 관광객의 급증으로 제주의 교통 여건이 서울 못잖게 번잡한 건 다 실감하는 일이다. 약속이 있어 일찍 출발하지 않았다간 낭패하기 십상이다. 꽉 막히는 도로, 참 갑갑하다. 그렇게 차가 밀린다. 이리저리 얽히며 거미줄처럼 또 웬 새 길이냐 투덜대다가도 그럴 만하다 끄덕이곤 했다. 상상 못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곳에 줄곧 살아온 사람인데 놀랄 수밖에.

제주도가 대중교통체제에 메스를 들이댔다. 심각한 교통정체 해결 방안을 내놓아 대중교통을 전면 개편해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제주 전역을 빠르고 촘촘히 연결해 도민의 편리를 꾀하면서 교통 소외지역이 없게 한다는 취지다.

빨강색은 공항에서 도내 읍·면 소재지 등 주요 정류소를 경유하는 급행버스, 파랑색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고 도착하는 간선 시외버스, 초록색은 시내 중심과 외곽지역을 연결하는 지선버스다.

버스우선차로라는 낯선 방식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혼잡스러울 테지만, 1200원이면 섬을 돌 수 있어 이용자에게 잇속이 있다. 그만큼 파격적이다.

하지만 무려 800억 원을 투입하면서 준공영제 조례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준공영제 실시로 민간버스회사와 맺은 표준운송원가가 사실상 민간회사에 훨씬 유리하게 체결돼 그쪽만 배불리기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런 속내 말고도 도민들에게서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차 번호 자릿수가 복잡해 헷갈린다느니, 기존 노선에서 이탈해 어수선하다느니, 더러 한쪽에 편중돼 이전만 같지 못하다느니…. 특히 중앙차로 개설에 따른 부수적인 도로상의 우심한 혼란, 턱없이 좁혀진 인도로 인한 보행 불편 등 속속 불평들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만한 큰일을 단행하며 고민했을 당국의 입장도 십분 이해해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통 큰 결단 없이 될 일인가. 또 도민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니 과도한 비난은 삼가야 한다. 비생산적이다. 실제 버스를 타 보면 편리한 건 맞지 않은가.

이참에 제주의 교통문화가 확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운전기사들이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신선하다. 그러면 그들이 손님을 맞는 자세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손님이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마다 미소 지으며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 인사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려는 건 아니로되, 할 수만 있으면 좋지 않은가.

볼일이 있어 조천에서 아라까지 버스를 타고 오가면서 보고 느낀 것이다. 한 운전자가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말을 반복하고 있어 감동적이었다. 대중교통이 개편되면서 이런 문화가 싹트려는가. 그 기사, 정류소마다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인사를 건네는 걸 보며 놀랐다. 더욱 놀란 건 수없이 건네는 인사말에 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남녀노소 단 한 사람도.

“어서 오십시오.”라 하는데, “수고하세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 인사한다고 반드시 그 인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대 속에 지켜보려 한다. 제주에 이런 인사문화가 꽃핀다면 얼마나 탐스러울까. 꽃만큼이나 아름다울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며 ‘수고했습니다.’라고 또렷이 인사를 건넸다. 백미러 속에서 기사님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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