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연 연주자가 플루트 연주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로렐라이’를 선보이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 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아가씨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

 

-하이네의 ‘로렐라이’

 

 

   
▲ 제주국제관악제 집행위원장이자 바람난장 음악 감동을 맡고 있는 이상철씨가 로렐라이 요정상이 세워진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느 친구가 그랬다. 비행기 시간이 조금 남아 무작정 제주시 해안도로에 갔다가 탁 트인 바다를 향해 “야 아아~”큰소리 한 번 내지르고 왔다고. 연암 박지원도 그랬다. 요동 벌판에 첫발을 디디며 울기에 좋은 ‘호곡장(好哭場)’이라고. 그래, 공항 가기 직전에 답답한 심사를 사자후처럼 토하기에 딱 좋은 곳, ‘어영공원’이다. 거기에 로렐라이 요정상도 있다. 이 요정상은 2010년 8월에 세워졌다. 제주시와 로렐라이시가 국제우호도시 협약을 맺으며 우정의 증표로 제주시에선 돌하르방을, 로렐라이시에선 이 요정상을 기증한 것이다.

 

플루티스트 김수연이 이 노래를 연주를 하는 동안, 바람도 파도도 갈매기도 함께 춤을 추었다. 마치 로렐라이 아가씨를 초대하는 엄숙한 제의 같았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이 노래는 40여 년이 지나도 우리의 입술 끝에 숨어 있다가 저절로 돌림병처럼 합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로렐라이 언덕이 문득 그리워졌다. 시의 힘, 노래의 힘은 그런 것이다.

 

사실 로렐라이 언덕은 볼거리가 그 유명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죽했으면 호사가들이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 그리고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과 더불어 유럽의 3대 허무관광지라고 입방아를 찧겠는가.

 

내 아집일까. 로렐라이 요정상은 라인강변 보다 ‘어영공원’에서의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기다림은 물마루를 헤치고 오는 게 제격일 테니깐.

 

아쉬운 것은, 서귀포 새연교의 음악박스처럼 이 요정상 곁에 앉으면 ‘로렐라이’ 노래가 흘러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김수연에게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로렐라이’를 몇 번이고 청해 들었다.

 

최근에 ‘희곡’보다 ‘소설’ 창작에 더 몰두하고 있는 강용준 작가가 시 한 편을 들고나와 자신이 직접 낭독을 하겠단다. 시낭송가들도 몇 분 있는 앞에서 말이다. ‘무근성 옛집’이란 시다. 온통 시요, 노래인 이곳 어영공원, 여기에선 아마추어 낭송가가 웅변하듯 낭독해도 죄가 안 된다. 로렐라이 아가씨도 함께 들어준다. 우리는 파도 탓인지 바람 탓인지 ‘무근성 옛집’ 같은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홍진숙 作 제주에서 만난 로렐라이 전설.

내 친구 공철이는

벗들과 어울려 질그렝이 술을 붓다가

취기가 목젖까지 차오르면 으레

두개 없는 손가락으로 마이너 코드 잡고

영게 울리듯 오 대니 보이를 불렀다

 

그런 밤이면 어김없이 강남달이 뜨고

달빛 아래 과꽃이 피고

물로야 뱅뱅 돌고 돌아 내 순번이 오면

중학교 가을 소풍 때 축구 잘하는 정욱이가

외로 고개 틀고 허스키하게 부르던

어느 먼 나라의 옛집을 떠올렸다

 

사십 년이 지나 어느 병원 진료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난 정욱이의 올 빠진 머리와

비스듬히 굽은 등과 낯설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처방전 받고 먼저 나오면서 나는

정욱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캔터키 옛집과

내가 살던, 어처구니없이 팔려버린

무근성 옛집을 불현듯 떠올리는데

몸살 탓인지 겨울 햇살 탓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김수열의 ‘무근성 옛집’ 전문

 

글=오승철

그림=홍진숙

음악=김수연

낭송=강용준

음악감독=이상철

사진=손희정

 

※다음 난장은 10월 28일 오전 11시 서귀포 미악산(솔오름) 난장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