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의 ‘무망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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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타이완 타이베이시에 있는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은 타이완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초대 총통 장제스(蔣介石)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장제스의 본명은 장중정이다. 1975년 89세의 나이로 서거하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화교들의 모금으로 지어졌으며 1980년에 개관했다.

중정기념당에 입장하려면 총 8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89라는 숫자는 장제스의 나이를 뜻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지인들과 최근 찾은 중정기념당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사진 하나가 있었다. 그가 아들 장징궈(蔣經國)와 타이완의 진먼다오(金門島) 태무산(太武山)에 있는 ‘무망재거(毋忘在?)’라고 쓰인 표지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거(?) 땅에 있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고통스러운 시절의 일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언젠가는 본토를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현실에서는 백일몽으로 끝났다.

▲“유리창에 총알이 숭숭 박혔다. 총탄이 요란하게 빗발치는 가운데 장제스는 뒤쪽 창문을 넘어 달아났다. 1936년 12월 12일 새벽, 당 현종과 양귀비가 머물렀던 시안(西安) 화칭츠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허둥지둥 뒷산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곧 만주군벌 장쉐량(張學良)이 이끄는 군인들에게 납치됐다. 장제스를 압박해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단하고 항일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장제스는 13일 후 풀려났고, 약속대로 항일전쟁에 나섰다. 국민당 정부의 포위 공격으로 전멸 위기에 놓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은 궁지에서 벗어나 1949년 중국 대륙을 차지했다. ‘시안사변’이 없었으면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편집장 출신 중국 전문가 펜비(Fenby)가 쓴 ‘장제스 평전’의 일부다. 장제스는 소금장수 아들로 태어나 청년 혁명가로 성장하면서 중화민국 국부(國父)인 쑨원(孫文)의 신임을 얻었다. 쑨원이 깃발을 든 북벌을 이어받아 중국을 통일하고 근대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그의 생애는 드라마틱했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대결은 ‘초한지’로 비유되곤 한다. 역발산기개세를 자랑하며 절대적 힘을 가진 항우는 약세였던 유방에게 굴복했다. 후세의 사가들은 항우의 패인으로 졸렬한 용병술, 민심 이반 등을 들었다. 장제스도 ‘국공내전’ 초반기는 수적이나 무기, 외교적 역량에서 앞섰으나 최후에는 패하고 타이완으로 퇴각했다. 장제스의 패인도 항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심 얻기에 뒤졌다. 현 정부의 무망재거는 촛불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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