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돌림
조리돌림
  • 제주신보
  • 승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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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간음한 여인에게 가했던 조리돌림이란 형벌이 있었다. 육체적 감금은 없지만, 해당 죄인의 죄상을 적어 목에 걸고 마을을 돌며 끌고 다녔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수치심을 극대화하여 혹독한 망신을 주는 벌이다.

남자일 경우에는 더 강했다. 북을 이고 맷돌을 지고는 온 마을을 돌게 한다. 벌거벗기거나 해당 죄목을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손, 발을 포박하기도 한다.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백성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쉽게 통치하기 위한 위정자, 마을을 다스리던 촌장의 술책이다. 죄는 대부분 사적(私的)인 것이다. 도덕적으로 묵인하긴 어렵고, 형벌로 다스릴 사안이 아닐 때 가해졌다.

인권에 배반하는, 의당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조리돌림. 그와 같은 행태가 방법은 다르지만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총리와 장관 등 인선을 위한 신상털기 청문회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마녀사냥 같은 인신공격엔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도 포함된다. 어쩌면 당연하다.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중앙 부처의 수장이라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도 허물이 있으면 안될 것이다. 청백해야 한다. 하지만 신상털기 해본다면 조리돌림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 자신 있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서로 간 으름장 놓아 봤자, 실은 뭣(?)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탓하는 격이다.

집권했던 대통령들도 어느 하나 조리돌림 당하지 않은 사람 없는 셈이다. 잘못이야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국가적 망신이 되는 부분만은 자제했으면 좋을 것 같다. 혼자의 생각일까.

작금의 행태가 동방예의지국, 정이 많고 용서와 관용이 많았던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으로서 지을 수밖에 없었던 가벼운 잘못은 묵인하면 좋다. 그게 관용의 미덕이다.

편 가르기 싸움을 할 때는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우리. 대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하든 말든 오직 나와 우리가 승리를 쟁취함에 혈안이 돼 있기 십상이다. 논리에서 멀찌감치 일탈한 설전만이 난무한다. 정치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게 이 나라 현주소다.

주적이나 외적과 싸움에는 꼬리를 빼거나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 나약하고 온순하게 보임은 그 분야에 능력이 없어서다. 어찌 된 일인지 적과 싸움보다는 정파싸움에는 능력을 발휘한다. 승리가 우선이 되고 적에게 이롭더라도 정파싸움의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자는 수장은 물론 말단 공무원도 될 자격이 없는 사람 아닌가. 적을 겨눠야 할 총구가 아군을 겨누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국익을 위해 인재를 만들어 가야 함에도 우리 스스로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해 허물을 찾는 데만 급급해 한다. 이 나라에 노벨상 수상 소식이 뜸한 이유가 뭘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죄를 만들어 내리누르고 깎고 봐야 한다. 잘해도 적에겐 칭찬이 따르지 않는다. 실로 갑갑한 일이다.

회사나 작은 단체에서도 따라 하는 건지, 전임자의 잘못을 까발려야 자신이 잘한다는 평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누가 수장이 됐든 전임자는 조리돌림을 각오해야만 하는 사회다. 학식이 높은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너그러움으로 웃어 주고, 팔 벌려 안아 줘야 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은 아군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또 있다, 적과의 동거.

공격을 좋아하는 당신, 그러는 당신도 임기가 끝나면 조리돌림 당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