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제주인 숨결 품은 생산지이자 영혼의 안식처…공존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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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돌문화 공간 드르팟-돌랭이·자왈 등으로 구성
단순히 땅이라는 인식에 타운하우스 개발지 전락
▲ 제주의 주요 경관을 이루는 드르팟은 매우 중요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황무지로 인식되면서 타운하우스 개발지로 무자비한 개발이 자행되고 있다.

드르팟은 다양한 돌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제주의 특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경관 지대이다.


지리학적 개념으로 말하면, 농경지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밭담, 자왈(자월), 산담 등 생과 사의 돌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공간이다.


드르팟의 복합성을 제거하고 드르팟을 농경지로만 인식하게 되면 단지 드르팟의 돌문화는 밭담 밖에 없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드르팟은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총체적인 돌문화 지대로 생산지이자 영혼의 안식처가 공존하는 곳이다.

 

드르팟은 육지처럼 평야 같은 넓은 들판이 아니다. 특히 그곳은 거친 들판에 해당하기 때문에 가장 제주다운 풍토를 보여주는 곳이다.


밭, 돌랭이, 머들, 무덤, 빌레, 설덕, 자왈(자월)들로 함께 어우러진 농업 생산 공간인데 이 공간을 단순히 황무지로 생각하게 되면 제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이 공간은 목축, 반농반어, 어업으로 나뉘는 제주 3대 생산의 개념에서 ‘반농반어(半農半漁)’ 중 반농(半農)의 식량 전부를 차지한다.

 

거친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밭작물 곡식을 생산하고 그 부족한 식량 자원은 반어(半漁)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마을을 사이에 두고 마을 위쪽으로는 농업을 하고 마을 아래로는 어업을 함으로써 두 산업이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또 서로 갈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드르팟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벌써 해안 마을은 전통 마을 요소가 파괴되고 도시와 시골의 구분도 해체된 지 오래다.

 

드르팟은 황무지로 인식되면서 타운하우스 개발지로 무자비한 개발이 자행되고 있다.


드르팟이 사라지게 되면 산업 자체도 바뀌게 되고 의식주 문화 자체가 교란된다. 인간은 의식주의 영향 아래 자신의 몸과 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 땅에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의 터가 사라지게 되면, 문화 또한 정체가 없게 되고 세계화 시대가 심화될수록 지역은 더욱 가난해지고 지역민들은 집과 생활력을 잃게 된다.


 드르팟은 제주의 주요 경관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황무지로 인식되면서 아무렇지 않게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제주를 지리학적으로 거칠게나마 공간 구분을 해보면 ①썰물 때 드러나는 조간대 ②산물이 있는 해안 마을 ③농경지와 산담이 형성돤 드르팟 ④마을 마소의 목양지로서의 공동목장 ⑤야생의 밀림지대인 곶 ⑥목장지대인 중산간 지역 ⑦오름지대 ⑧거친 임야지대인 산전 ⑨계곡과 산맥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 즉 한라산 지대로 편의상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드르팟을 구성하고 있는 문화생산적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 밭 구석에 쌓아둔 머들은 산담을 다시 쌓을 때 이용된다.

▲밭


식량 공급지 역할을 하는 경작지이다.

 

과거에는 지역에 따라 농작물의 차이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주로 가뭄에 강한 고식을 경작하고 의, 식의 원료 공급지이기도 하다.

 

보리, 조, 콩, 고구마, 산듸, 목화 등이 주된 작물이었다.


특히 산듸는 제사의례용으로 심었고, 목화는 면화라고도 하여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혼례용 이부자리를 준비하기 심었다.

 

근대로 올수록 환금(還金) 작물 들인 감자, 당근, 양파, 기장, 무, 마농, 양배추 등을 많이 심었다.

 

그 외에도 녹두, 호박, 강낭콩, 팥 등 거의 모든 생활 음식에 필요한 작물들을 재배한다.

 

1970년대는 숲을 개간하거나 밭을 개량하여 감귤 과수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돌랭이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돌랭이는 작은 밭을 말한다.

 

이런 작은 밭들은 빌레와 빌레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기게 되면 예외 없이 돌랭이 밭을 조성한다.

 

이런 밭은 바로 제주인들의 식량의 중요성을 아는 때문으로 과거 척박한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잣벡


밭담과 밭담이 교차되는 지점에 쌓아 놓은 잔돌 벽을 잣벡이라고 한다.


밭에서 나온 자갈을 차곡차곡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돌벽이다.


용어나 의미가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 잣벡은 경작하는 과정에서 나온 돌을 처리하는 방편이었다.


일종의 자갈 저장소를 만든 것이다. 옛날에는 이 잣벡의 작은 돌들은 산담을 쌓을 때 접담(겹담) 사이를 메우는 용도로 쓰였다.


잣벡이 길게 쌓인 잣(혹은 잣담)인 경우 안쪽 밭으로 이동하는 통로로 시용된다.

 

이를 잣질이라고 한다. 잔돌이 많은 지역에 도(입구나 통로)가 없을 때 잣벡 위로 길을 내 왕래하는 길이 된다. 삼양, 귀덕, 애월, 금성, 봉성, 한림 등에 남아있다.   

    
▲머들 


잣벡이 주먹보다 작은 자갈류로 이루어졌다면 머들은 머리통 만 훍은 돌로 밭 가운데 탑처럼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말한다.

 

담돌의 양이 많게 되면 빌레 위에 군데군데 쌓는다.

 

이 머들은 밭담을 쌓다 남은 돌로 이후 산담을 조성하게 되면 이 돌을 사용한다.


▲설덕, 서르릭, 서드럭


밭이나 길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빌레에 돌무더기로 이루어지고, 잡목이 자란 곳을 말한다.


소규모 암반지대이기 때문에 밭을 조성하지 못하고 남은 황무지이다.  

 
▲산(무덤)


무덤을 산이라고 한다. 한나라 때 무돔을 산릉, 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15세기 이후 산담은 목장지에 조성되었고 그때는 마소의 출입과 산불 방지의 기능이 주가 되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점점 산담은 밭에 조성하게 되면서 그 기능은 경계 표시와 기념비적인 상징이 되었으며, 무덤 관리 측면이 더 강하게 되면서 드르팟에 산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산담은 오늘날은 급속히 사라져가는 위기의 문화조형물이 되었다.


드르팟은 조상과 자손이 일체화되는 문화적인 장소가 되었다.


▲빌레


용암류가 흐르다 굳은 암반으로 경작 시 그 빌레를 깬 돌로 밭담이나 산담을 쌓았다.

 

흙의 깊이를 약 50cm 정도 파내면 땅 속은 암반 지대이고 돌담은 이런 돌을 깬 까닭에 많아졌다.  


▲자왈(자월)


곶이란 아아용암이 많고, 다양한 잡목 수림과 가시 넝쿨, 그리고 방초(芳草)가 어우러진 천연 생태 지역의 밀림과는 달리, 자왈(자월)은 숲이나 밭, 임야 등 어느 곳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 가시밭과 잡목이 우거진 드르팟 지역을 말한다.


자왈(자월)에는 꿩, 오소리, 쥐다리, 노루와 같은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못


밭농사가 주였던 과거에는 집집마다 소나, 말을 꼭 키워 짐승의 동력을 사용하였다.

 

밭 가까운 곳에 못을 기억해 두었다가 마소를 물 먹이기도 하지만 드르팟이나 산전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팡이자 손 씻는 장소가 디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런 못에서 개구리, 미꾸라지, 잠자리를 잡기도 했다. 


▲장밧, 영장밧


일시적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곳으로 영장밧이라고도 한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소유지가 있는 드르팟에서 장례를 치르는 비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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