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의인 김만덕을 만나다
제주 의인 김만덕을 만나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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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는 나눔과 정의의 실천이 아닐까 한다.

요즘 적폐(積弊)의 근간이 되는 집단이기주의와 개인이기주의 역시 우리 사회와 문화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들이다.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이나 제주 신공항설치 결사저지와 같은 갈등이 고조되는 현상도 모두 이러한 나눔과 정의 실천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자고로 모든 갈등은 상대가 있는 법이니 서로 양보와 타협만이 해법이다.

얼마 전 제주끽다거 회원들과 함께 제주의 의인(義人) 김만덕을 만나기 위해 제주시 동문시장 앞 산지천을 찾았다. 산지천 앞에 있는 김만덕기념관에는 김만덕의 생애와 영정 전시,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소개되고 있었다. 특히 괄목할 만한 것은 기념관의 공간을 적절히 활용해 나눔문화관과 나눔실천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나눔문화전시관의 이름으로 김만덕의 나눔과 봉사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문화교육관의 역할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의인 김만덕은 조선 정조(正祖)임금 때 제주에 살았던 실존적 인물이다. 유통업으로 거상(巨商)이 돼 가난했던 서민들에게 수많은 구휼(救恤)을 베풀어 나눔과 봉사를 실천했던 조선의 훌륭한 의인(義人)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했기에 가난의 아픔을 알았고 부모형제를 일찍 여의었기에 혈족의 그리움을 이해하는 속 깊은 사람이었다. 번암 체제공이나 다산 정약용도 필설로 크게 찬탄한 바 있으며 추사 선생은 그의 선행을 기려 김만덕의 3대손 김종주에게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친필을 써주었다고 한다.

김만덕은 육지와 제주를 잇는 거상이 돼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이 재물로 흉년이 들 때마다 제주인들에게 구휼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이러한 김만덕의 나눔실천궁행은 정조임금의 귀에까지 전달됐다. 정조대왕은 김만덕을 불러 후한 상을 내릴 양으로 김만덕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때 김만덕은 2가지 소원을 얘기했다고 한다.

첫째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 궁궐을 보고 싶고 둘째 금강산 유람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원했던 것은 재물이 아니라 육지땅, 그것도 궁궐을 방문하고 또 자신의 안목을 높이기 위한 금강산유람까지 요청했다. 정조임금은 김만덕에게 수의녀(首醫女)의 벼슬을 내리고 금강산유람을 쾌히 승낙했다.

지난 6월에도 제주에 또 다른 이색적인 경사가 있었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제주 환경보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의 아우 서동철과 함께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환경부 주최로 열린 제22회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것이다.

서 이사장은 연인원 70만 명이 찾는 ‘제주올레’를 조성, 관리·운영하고 클린올레 사업을 통해 환경보호 활동을 벌인 공로 등을 인정받았다. 또한 일본의 규슈올레(19개코스)와 몽골의 몽골올레를 수출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주에는 삼대 전설적 여걸이 있다. 그 첫 인물이 의인 김만덕이요, 두 번째는 올레길의 창시자 서명숙이며 세 번째는 번 돈을 아낌없이 장학 사업에 내놓는다는 연기자 고두심이다. 나는 앞으로도 천혜의 보물섬 제주 탐라국에 많은 의인(義人), 의사(義士)들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환경(물질)은 정신(문화)이요 정신은 환경이다. 제주만 한 청정환경이 없을진데 이만한 곳에서 대한민국을 떠안고 갈 인재들이 어찌 나오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