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먼저가 아닌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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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수필가

은둔의 왕국 부탄에 대한 어느 신문의 대담기사를 읽으면서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돈이 먼저가 아닌 나라라는 말이 생소했다. 한동안 회자되던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양치엔’ 씨는 12년 전 부탄에서 제주대에 유학 와서 3년간 한국어와 마케팅을 배우고 돌아갔다. 그는 귀국 후 오스트리아의 한 대학에도 유학해서 2년간 호텔 마케팅을 수학한 부탄왕국의 여행 가이드다.

그는 한국 손님에게서 “제주가 옛날과는 달라, 관광객이 넘쳐나고 많이 바뀌었어” 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12년 전 제주의 자연환경은 부탄과 비슷해서 좋은 기억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기를 살갑게 대해주던 한 아주머니와의 추억도 되살렸다. 관광과 돈이 먼저가 아닌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가 12년 전 제주의 기억을 더듬으며 관광객이 넘쳐난다는 말을 듣고 “아, 그래요. 참 좋겠네요”라고 말하지 않는 연유가 무엇일까. 관광객이 넘쳐나면 돈도 넘쳐나고 땅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주민의 행복도 넘쳐날 거라는 단순한 계산이 나올 법한데….

부탄은 2010년 148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다. 당시 부탄의 1인 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달러, 물질적 풍요로는 우리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경제성장과 번영으로만 국가 순위를 평가하지 말자는 나라다.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가로 국가를 평가하자는 말의 진의를 알 만하다. 부탄 인구의 97%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양치엔’ 씨는 한 달 200~250달러를 번다. 우리 돈으로 3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그래도 그는 만족한다고 말한다. ‘인터뷰어’가 그에게 선진국들보다 어떤 점에서 부탄이 더 좋은가를 물었을 때 “이렇게 훌륭한 자연환경이 세계 어디에 있나”라는 그의 대답은 단순명료했다.

그는 대담 중에 국왕에 대한 존경심을 빈번하게 표현했다. 국왕이 국민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신뢰는 신앙이나 종교를 웃돈다. 37세의 젊은 국왕을 최고의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는 양치엔씨가 부럽다. 그가 3년간 유학 생활을 했던 제주에 관광객이 넘쳐난다는 말에 선망과 긍정의 표현을 감춘 속 깊음이 엿보인다.

관광객이 넘쳐난다는 말이 반갑지 않은 곳이 또 있다. 물의 도시 베니스다.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항구도시다. 이 도시에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주민이 불어나야 할 텐데 상주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베네치아 시민들이 하루 일고여덟 척 드나드는 크루즈 입항을 저지하고 나설까.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제2공항을 하루 빨리 개설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와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제주에 중국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 크루즈 뱃길이 끊긴 지도 몇 달 되는 것 같다. 사드 여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거대 중국의 제주 관광에까지 사드 보복을 꺼내든 건 좀스러운 처사가 아닐까 싶다. 꼭 풋감 씹은 기분이다.

중국관광객이 즐겨 찾던 바오젠거리가 새 이름을 찾고 있다는 신문기사는 우리를 슬프게 했다.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중국 여행객과 결별의 수순을 밟아가는 것인가 하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덧씌워진다.

부탄 왕국은 관광 입국세를 받는 나라다. 베니스도 돈을 먼저 내야 관광을 할 수 있다. 중국 관광객이 넘쳐 날 때 우리는 돈을 받지 않았다. 앞으로도 돈을 받을 개연성은 매우 낮다. 중국 관광객과의 관계를 한때 추억으로만 치부하기엔 여운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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