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먼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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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세상 ‘키움학교’ 대표

문학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세종대왕릉에 갈 기회가 생겼다. 마침 일요일 오후여서인지, 방학 중이어서인지 인파가 생각보다는 많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도 꽤 있었다. 입구에는 등산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보아하니 술도 마신 것 같았다. 동행했던 어르신이 지나는 길에 한마디 한다.


“좀 조용히 합시다!” 그 순간 나도 아차! 그렇지, 여긴 관광지가 아니라 유적지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릉은 고색창연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드넓은 잔디밭과 주변을 들러싼 고송들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기념관에서 왕릉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는데, 500여 m를 사이에 두고 걸어가는 내내 조선의 역사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왕릉이 눈앞에 보였다. 제법 우뚝 솟은 동산이 있어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올라갔더니 그곳에 소헌왕후와 합장으로 모셔져 있는 대왕릉이 기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역시 열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웃고 떠들고 있다. 아까 입구에서의 무리와는 다른 사람들일 텐데 모습은 여전하다.


“김치하세요. 아니아니 더 가까이 옳지!” 제단 바로 앞에 남녀가 앉아있는데 놀리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다.


동행이 또 엄숙하게 한마디 한다. “왕릉입니다. 조용히 합시다!” 그중 한 사람이 술 취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대답하면서도 전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은 없는 듯하다. 괜히 즐거운 분위기를 망쳤다는 것처럼 쭈뼛쭈뼛 일어서더니 내려가버린다.


마침 옆에 서 있던 부부 중, 여성분이 한 마디 한다.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왕릉을 찾아다니는데 어디나 똑같아요. 입구에서 들어올 때, 몇몇씩 모아놓고 어떤 교육이나 주의사항을 알려야 할 것 같아요.” 하신다.


그러자 관리인도 나타나서 한 마디 한다. “여기서 이러지 말라고 하면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감당을 못해요. 어떤 사람들은 올라가지 말라는 부분까지 올라가려고 하기도 해서 이렇게 지키고 있지만, 참 한심스러운 모습들 많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대왕의 업적이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 유적지이건만, 의미는 쇠퇴하고 단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관광지나 다름없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 여성분 말에 의하면 곳곳의 왕릉은 여기보다 훨씬 더 함부로 한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단 이곳부터만이라도, 누군가가는 먼저 나서서 질서 운동을 해야 할 정도였다. 유적지 관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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