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2001년 히트했던 영화 ‘친구’의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다. 사람의 삶에서 친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 영화였다.

실제로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그 사람의 인생과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좋은 친구를 만나 성공한 사람, 또 나쁜 친구를 만나 망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돌이켜 보면 진정한 친구는 무엇보다 서로 믿음이 두텁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깨지 않고 서로를 도와주고 이해하고 감싸준다. 그 뿌리는 진솔함이 아닐까 싶다.

이런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더구나 어려울 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뢰와 헌신이라는 가치를 공유한 동반자와 다름없다.

▲어느 해 영국의 한 출판사가 상금을 내걸고 ‘친구’라는 뜻이 무엇인지 공모를 했다고 한다. ‘기쁨은 곱해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등 그 대답이 모두 달랐다. 그중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1등을 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이해하고,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이가 ‘진짜 친구’라는 말인 듯하다.

그런 면에서 대표적인 우정론인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새삼 떠오른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숙아는 관중의 잇단 과오를 덮고 그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게 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친구의 변치 않은 우정에 감동해 관중이 남긴 이 고백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근래 일본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에게 “선거 후 처음 만난 좋은 친구이며 그와의 우정에 감사한다”고 치켜세웠다. 앞선 골프 회동에선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은 기백이 넘치는 대화로 가득찬 경이로운 친구”라며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비록 이해관계에 얽힌 찬사이긴 해도 양국 수장은 서로를 핵심 동맹국이라 부르며 관계를 돈독히 했다.

그에 비해 우리 정부의 의례적인 태도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중요한 손님이 오면 일부러라도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게 통례인데 우리는 무언가 경직돼 보인다는 생각은 착각일까.

황금률이란 말이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명구다. 인간관계는 물론 국제관계에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무한대일 수 있다. 반면 자국의 이익과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돌아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