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창훈 作 한라산과 솔오름 바람난장.

가을 오름엔 바람이 있어야 한다

 

억새가 억새 되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높아갈수록 더욱 푸르러가는 하늘 아래

바람이 억새를 흔들어주면

오름이 우쭐우쭐 높아져간다

 

팔 벌려 반기는 오름

굼부리에 안기면

나도 바람에 흔들린다

 

오름에 오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려야 한다

굳은 목도 흔들리고

힘 준 눈동자도

실안개 속에 솟은 먼 오름 보며

흔들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쉰 목으로 부르던 노래를

바람에 날려버려야 한다

 

오름에 오면

내가 억새가 되어야 한다

억새 되어 흔들리도록

가을 오름엔 바람이 있어야 한다.

 

- 한천민 「가을 오름엔 바람이 있어야 한다」에서

 

 

   
▲ 가수 이동원과 테너 한동균이 정지용 시·김희갑 작곡의 ‘향수’를 통해 화음을 선보이고 있다.

 

오름 정상까지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는 오름이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서귀포시의 솔오름이다. 나는 이 오름을 볼 때마다 “예전에는 참 고와신디…” 하며 아쉬운 탄식을 하게 된다. 더구나 이 맘 때, 꽃향유며 쑥부쟁이들은 나날이 시들어가고 억새는 불어오는 바람에 흰 머리털을 주억거리며 등이 굽어갈 무렵이면 솔오름의 피부는 황갈색으로 물들어갔다. 어쩌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며 조명을 비추면 황갈색 피부의 오름은 수척한 관능으로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달려와 안겼다. 그랬던 솔오름에 이제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그 매끄럽던 피부는 전설이 되고 말았다.

 

솔오름은 서귀포시 오름 중에서도 소문난 미녀이다. 그런 오름 머리에서 바람난장을 펼친다. 오늘은 한기팔 시인, 김용길 시인, 한천민 서귀포문협지부장을 비롯 서귀포문인협회 회원들과 공동으로 펼치는 마당이다. 가을빛이 어려서 그런가, 오름에서 만나서 그런가, 다들 보통 때보다 몸무게가 얼마쯤은 빠져 보인다. 수필가 고해자의 시낭송으로 난장의 문을 연다. 한천민의 시 「가을 오름엔 바람이 있어야 한다」를 읊는 소리를 바람이 자꾸 헤살놓는다. 시 몇 구절은 갑자기 찬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바람이 시에 응답하는 걸까.

 

다음은 박수소리가 크다. 가수 이동원과 테너 한동균이 등장, 정지용 시·김희갑 작곡의 「향수」를 부른다. 이 노래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1989년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이 곡을 발표하자 대한민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발칵 뒤집혔다. 성악가 박인수는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당했다.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당시는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유행가 가수는 얼씬도 못하게 하던 시절이었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벽을 깨버린 의미에서도 이 노래는 특별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곡이 히트한 데에는 두 가수의 내추럴한 목소리의 기막힌 화음(和音)에 있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아쉬워하는 후렴구는 언제 들어도 사무친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어서 이동원 가수는 오승철 시인이 작사하고 최종혁이 작곡한 「닐모리 동동」을 부른다.

닐모리 동동 닐모리 동동/ 삘기꽃 피어도 닐모리 동동/ 동백꽃 피어도 닐모리 동동~

내일 되면 오려나, 모레 되면 오려나, 발 동동 구르며 조바심치며 그리워하는 제주의 정서를 품은 언어가 ‘닐모리 동동’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덕담을 건넨다, 이 노래랑 산 넘어 가라, 이 노래랑 물 건너가라! 오늘은 노래가 맛깔스러운 날이다.

 

테너 한동균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로 바톤을 잇는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 고경권 연주자가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한다. 성악가들은 좋은 노래를 위해 목소리를 아껴서 말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밤에 잘 때도 성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따뜻하게 실크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잔다고 한다. 사람이 죽어도 청력은 10분~20분 정도 살아있다고도 한다. 그러니 떠나는 자에게 난 어찌 사느냐고 통곡하며 우는 건 실례가 되겠다. 당신을 만나 참 고마웠다고,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는 속삭임을 고인의 귓가에 전하는 이별, 지금부터라도 마음에 다짐해 두어야겠다.

 

아, 그런데 한라산이 홀연히 구름을 벗고 모습을 보인다. 정상 부분이 설문대할망의 누운 얼굴 형상이다. 이마며 눈썹, 그리고 코와 턱 선까지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 가깝다. 산이 우리에게 문득 자신의 비의(秘意)를 보여줌이다. 신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더하면 산이 되느니!

 

 

글=김순이

그림=유창훈

노래=이동원(가수)·한동균(테너)·고경권 (하모니카)

음악 감독=이상철

시 낭송=고해자

사진=한천민

 

※다음 바람난장은 11월 18일 오전 11시 따라비오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