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탔으면 기록에 도전하는 것 아닌가. 바로 그 차를 운전하다 묻더란다.

“제가 차 한 대 사드릴까요? 너무 낡았어요. 바꾸세요.”

오죽 민망했으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얘기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제 터수대로, 말을 받았단다.

“멀쩡하게 숨 잘 쉬며 달리는 녀석, 숨통을 끊어 놓으라고? 멈추거든 바꾸자, 이게 아버지가 살아온 법이다.”

한 집 차 한 대를 고집해 온 그. 어간 열일곱 해, 가족이 공동으로 소유해 온 승합차. 여기저기 긁히고 색 바랜 그 녀석. 젊은 아들이 타고 다니려니 부끄럽기도 했으리라.

한번은 아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더란다.

생각에 잠겼다. ‘서른이 다 된 아들이 차 없이 지내는 것도 요즘 현실에 맞지 않다. 차를 산다고 이 엄한 애비 눈치를 보고 있잖아. 제 돈 갖고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가 맞지 않는다. 우스운 일이지.’

30년 지켜온 법을 허물고, 그러라 했단다.

화중의 아버지는 평소 셀 수 없이 많은 도로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킨다. 과속한 적 없고 단 한 번 불법 주차를 해 본 적도 없다. 아예 찻길에서 멀찌감치 세워 놔야 맘이 놓인다. 운전 30년, 경미한 접촉사고도 없다. 사고 기록이 전무하니 의당 최저 등급의 보험적용을 받는다. 보험 갱신 때마다 보험설계사가 놀란단다. 대한민국에 몇 사람 안될 거라며 혀를 차더라는 것.

그의 수필을 읽다가 놀란 적이 있다. 제목이 〈늙은 경운기〉. 열아홉 살에 사들인 걸 여태 몰고 있다지 않은가. 구멍을 틀어막고 녹물 나는 곳은 직접 용접해 땜질하고. 지금도 밭 갈고 짐 싣고 다닌다. 올해 그의 나이 예순, 그러니 경운기도 마흔 살이다. 밭갈이하다 멈춰선 경운기, 냉각기가 낡아 줄줄 새는 물을 보충하며 쓰다듬다 갈 수 있는 날까지 함께 가자 약속한다. “경운기 할아범, 우리 힘내서 일 마무리합시다.” 글 속의 화자, 다시 시동을 건다.

얘기 속의 그 아버지, 미생물 연구를 환경에 접목해 온 환경운동가이면서 서예가이자 수필가다. 신문에 칼럼도 쓰고 있다. 환경 분야에 천착해 KBS로부터 환경대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바 있다. 각고정려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큰 상이다. 그를 가히 팔방미인이라 하겠다.

주기적으로 노인대학에 나가 환경 분야의 강의를 진행한다. 초·중·고등학교에도 같은 분야의 체험학습 강사로 나선다. 매주 제주시와 조천읍이 주관하는 서예교실에 나가 붓글씨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농사를 짓는다. 환경운동가답게 유기농을 고집함은 물론이다. 제 손으로 쌓아올린 3층 집 주위 널찍한 텃밭에 잡곡을 재배하고 채소를 가꾼다. 울안엔 우리를 내어 닭을 치고, 개를 기르고, 표고버섯을 키운다.

넉넉한 공간은 전통음식 연구 교육장으로 열어 놓아 내외가 강의를 진행한다. 이론과 실습이 동시에 이뤄지는 그곳 이름이 맛깔스럽다. ‘코시롱헌 맛을 품은 정지’.

마을 어른의 한마디 말이 그의 친환경적 삶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 집에선 음식물 쓰레기 하나 나올 게 없을 거우다.”

어느 날, 강의를 위해 서귀포에 가면서 새로 사들인 아들 차를 탔다고 한다. 굽잇길을 손쉽게 오르내리다 속력이 붙는 것 같아 두 눈으로 속도계를 확인했단다. ‘법대로’ 가고 있는지.

우리 주위엔 이런 사람도 있다. ‘법대로’의 주인공을 밝히게 된다. 제주新보 ‘사노라면’의 필자 양재봉 작가다. 나를 문학 스승이라 깍듯이 대하지만, 나는 외려 법대로 사는 그가 존경스럽다. 겨울의 문턱에서, 그와의 연(緣)이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