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하다. 농익은 가을을 밀쳐 내는 겨울의 조급증에 햇살 조각이라도 걸치고 싶어진다. 매서운 냉기가 들이닥치면 마음의 온기가 살아남으려나.

가끔 바깥나들이 때면 저녁 시간에 동네 어귀에서 마주치는 할머니가 있다. 길가 처마 밑에 골판지를 깔고 앉은 클린하우스 지킴이이다. 요즘은 추위를 이겨 내려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모자와 장갑, 마스크까지 끼고 두 눈만 불을 밝힌다. 쓰레기 버리러 오는 사람도 드물어 혼자 웅크리고 앉은 채 시간을 보내며 무슨 상념에 잠길까.

세상살이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랴만, 돈 버는 일 참으로 어렵다. 개천이 아니라 통장에서 용 나는 세상이니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이야 일러 무엇 할까.

다행히도 나는 교직에서 한평생을 보냈으니 빈손으로 출발했지만 굶지는 않았다. 정신적 대우까지 셈한다면 적지 않은 보수였지만 월급봉투가 가벼워 여유라는 말을 모른 채 지낸 것도 사실이다.

젊은 시절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아내의 푸념을 확인하려 반년 동안 통장을 관리한 적이 있었다. 예상외로 여기저기 돈 들 곳이 많아 남편의 무게가 확 줄고 말았다. 도로 두 손으로 통장을 아내에게 바친 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낌새로 생계를 어림할 뿐 숫자의 실체를 모르니 행복하다 여기면서도, 용돈 올려 달란 말은 목구멍에서 차단되고 만다.

돈은 천의 얼굴을 갖는다. 선악의 마음은 없으면서도 손에 쥔 사람들이 천사를 낳기도 하고 악마를 만들기도 한다. 땀 흘린 돈의 미소로 노고를 달래기도 하고, 여기저기 갈취의 고리를 던지다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돈에 관한 이야기는 넘치는가 보다.

아내는 돈 잃고 사람 잃는 일을 경험했다. 10여 년 전 나와 상의도 없이 친구에게 차용증 하나 받고 돈을 좀 빌려주었다. 가치 판단은 주관적이어서 내게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상환 기한이 지나면서 잡다한 핑계만 늘더니 아예 전화도 끊어 버렸다. 배신감까지 합쳐져 속 끓는 아내에게 적선한 셈 치자 위로하면서도 흔적은 남는다. 갚을 능력이 없는 건지 마음이 없는 건지는 하늘이 알 일이다.

한동안 빚 탕감이라는 말이 무지개로 떠다녔다. 부채의 늪에서 구하겠다는 정부의 목소리는 따스하다. 가계부채 실태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채무상환 능력과 특성에 따라 맞춤형 지원 방안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장치가 선결이다.

MRI, 초음파, 특진비, 간병 서비스 등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건보 재정 소진이 속력을 낼까 걱정이다. 늘린 복지는 회수가 불가능이라 하지 않는가. 또한 현 정부의 나랏돈 투입 정책으로 2060년에는 국가채무가 3400조원 더 늘어난다는 한 중앙지 기사도 읽었고, 어디서는 ‘1초에 139만원, 빛의 속도로 늘어나는 국가채무’란 제목의 글도 보았다. 경제를 모르는 나는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후손들에게 빚을 늘리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이곳에는 ‘노리 또려난 몽둥이 삼 년 우려 멍는다(노루 때렸던 몽둥이 삼 년 우려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한 번 우린다고 냄새라도 스밀까만, 척박한 땅을 일궈 온 선조들의 숨결이 과장 속에 되살아난다. 아끼고 또 아끼라는 절약 정신은 내일을 담보하는 믿음일 테다.

돈에 한 맺힌 사람들에게 ‘사람 나고 돈 났다거나, 돈은 돌고 돈다.’는 말은 사치로 들릴 것이다. 그래도 어디서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두 손 모을 것이다. 세상은 부드러운 시선에 많은 것을 보여 준다고 하니, 마음의 군불을 찾으시길.